본가에는 아버지가 정성들여 키우시는 화초가 여럿 있다. 동백나무, 사랑초, 고무나무, 게발선인장······. 그 중 제라늄이 둘이나 있었다. 한 녀석은 크진 않아도 오종종하니 꽃도 잘 피우고 잘 자라는데, 다른 녀석은 이상하게 잎만 삐죽이 커지다가 누렇게 변해 시들었다. 꽃대도 안 올라오고 시들한데도 아버지는 마른 잎을 때어내는 게 미안하다시며 그냥 두셨다. 그 덕에 더 몰골이 앙상해보였는데도.
어쩌다 본가에 들리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가 제라늄 화분부터 찾았다. 시든 잎도 때어주고 마른 가지도 잘라 주며 아버지와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손끝에 알싸하니 제라늄 향이 묻어났다.
2019년 봄, 부모님 두 분 다 종합검진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아무 이상 없으셨고 아버지는 위내시경 중 용종을 발견했다. 크기가 제법 되어 조직검사를 했고 며칠 뒤 결과가 나왔는데, 암이라고 했다. 암이라니. 큰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도 위암 진단을 받자 아버지 본인을 포함해서 가족 모두 불안해했다.
아무리 초기고 비교적 간단한 시술로 치료를 끝낼 수 있다 하더라도, 암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공포와 무게감은 상당했다. 온 가족의 불안과 염려 가운데 초조하게 날들이 흘러갔다. 입원을 하고, 금식을 하고, 수술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입원과 치료 과정에서 아버지는 씩씩하게 잘 견디셨다. 계속되는 금식에 체중이 줄어 다이어트 된다고 웃기도 하셨다. 희미하게 웃는 아버지를 보며 시든 제라늄이 생각났다.
수술하시고 난 다음 날, 한 밤에 혼자 빈 집에 가서 시들한 제라늄을 우리 집으로 들고 왔다. 예쁜 화분을 새로 사서 옮겨 심고 해 잘 드는 마당에 내놓았다. 영양제도 주고 비료도 뿌려주었다. 시간 날 때마다 해 드는 곳 따라 자리도 옮겨주며 정성을 들였다. 정성을 알아주기라도 한 것일까, 손톱 만하던 이파리가 아기 손바닥 만해지고, 연둣빛에서 진초록으로 색이 바뀌며 건강하게 새로 가지를 뻗어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이파리가 흔들리면 슬며시 제라늄 향기가 올라오는 것이 내 맘을 알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퇴원하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제라늄도 같이 친정으로 돌아갔다. 한껏 싱싱해진 제라늄을 아버지는 무척 반기셨다. 손으로 이파리를 쓰다듬으며 제라늄 향을 한껏 맡아보시더니 예쁘게 잘 키웠다고 칭찬도 하셨다. 오랜만에 제라늄 향이 베란다에 가득했다.
지금도 본가엔 한 아름으로 자란 제라늄이 꽃을 피우고 있다. 목질화된 굵은 가지 위로 연둣빛 새 가지가 자라고 조그만 잎들과 넓은 잎들이 조화롭게 층층이 늘어서있다. 집에 들릴때면 나는 제라늄부터 살피고, 아버지는 몇 번씩이나 해주셨던 제라늄 향기 얘기를 꺼내신다.
"옛날에 너들 할아버지가 집 뒤에 제라늄을 가득 키우셨는데, 어릴 땐 이 냄새가 그렇게 싫더니, 나이드니 참 향기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