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서로의 근무지가 달라져도 가끔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사람 한 둘 쯤은 있으면 좋다. 20년 넘은 직장생활 동안 선을 넘지 않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인 사람은 고작 한 둘 정도다. 그건 내 인품과 매력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애초에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쏟아가며 관계를 가꿔나갈 사람을 직장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직장에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무리해서 상대에게 나를 맞추거나 내가 베푼 호의만큼 받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타인에게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나는 그 자유를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타인에게 호의를 계속 보여야할 의무도 없다.
십년 쯤 전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과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 내가 자신보다 어리다고 생각해서 나를 편하게 대한 부장에게 불편하다고 말을 했었다. 꽤나 권위적인 사람이라 나를 언짢아하는 것이 보였지만, 업무상 직접 부딪힐 일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물론 지나다 만나면 깍듯이 인사하며 지냈고,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해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한 달 쯤 지난 뒤, 부장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내 험담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을 전해 준 사람도 잘 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 사람이 나를 마음에 담아두고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했구나, 알게 되었지만, 불쾌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없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하는 건데, 할 수도 있죠 뭐.”하고 가볍게 넘겼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겠는가. 싫어하고 맞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단지 나처럼 좋은 사람을 친구로 둘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안됐다, 라고 덧붙였다. 농담처럼 웃으며 “제가 아무한테나 친구해주지 않거든요.”하고 말했더니 얘기를 해준 선배가 살짝 감탄한 표정으로 내게 쿨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뒷말 했다고 전해 들었을 때보다 쿨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더 놀랬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 태도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2015년 전후로 기시미 이치로가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한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국내에 소개됐고,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꽤나 도발적인 제목에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분석하는 글들도 많이 쏟아졌다. 가히 신드롬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이미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랄까. 너무 당연한 말을 제목으로 달고 있어서 읽어볼 흥미가 일지 않았다. 내가 미움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은 멘탈이 단단하거나 자존감이 높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자존감이 높지 않았기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기대치가 낮아서 나온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원인이야 어땠든지 간에, 이런 태도와 자세는 이후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에로 상처를 덜 받는 일종의 요령, 혹은 방패가 되었고, 지금까지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같은 직장동료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한 마음의 평정이 교실에서는 쉽지 않다. 일 년 간 함께 살아갈 교실에는 담임교사와 성향이 다른 아이들도 있다. 흔히 궁합이라고 표현하는데, 결이 맞는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맞지 않는 아이도 있다. 모든 아이들을 품으려 노력하고 비슷한 수준의 관심을 기울이고 공정하게 대하려 노력하지만 그 아이들이 모두 다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교실 안에는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아이들도 같이 있다. 젊을 때는 나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상처를 받고 좌절하기도 했다. 내가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으며 그건 욕심일 뿐이라고 현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교사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싫어해도 괜찮아, 그래도 나는 너를 존중하고 좋아한단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교사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욕심 따위는 없다. 그래도 교실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사랑을 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이왕이면, 이왕이면, 이왕이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