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계를 식물의 시간으로 맞추기

식집사의 주말은 분갈이죠

by 피어라

오늘은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아이들을 흙에 옮겨 심는 날이다. 화병속에서 적당히 뿌리내린 아이들을 보며 주말만 기다렸다. 옮겨 심을 적당한 화분과 조경석은 이미 다 준비해뒀다. 어젯밤 잠들기 전 물 속에서 하얗게 나온 뿌리들을 보며 흙에서도 잘 자라라고 응원해주었다. 내일, 드디어 D-day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부터 마셨다. 베란다로 나가 분갈이 전용 매트를 깔고 연장과 도구들을 펼쳤다. 두근두근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느낌이 든다. 몇 개월 동안 물에 담가두고 뿌리가 나오길 기다렸던 필리아페페와 고무나무 가지, 나비란 한 촉을 꺼냈다.

세상에, 저 조그만 페페는 그 와중에도 번식 뿌리를 뻗었다. 물속에서 저 초록잎을 어떻게 냈을까? 신기해서 저 아이도 따로 때내어 다른 화분에 올려놓았다. 과연 얼마나 크게 자라려나.


각각의 초록이들에게 어울릴만한 크기와 모양의 토분을 골라놓고 맨 밑바닥에 화분망부터 깐다. 배수를 위해 바닥에 마사토를 살짝 넣고 그 위에 배양토를 듬뿍 담는다. 여리게 나온 하얀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펴서 흙 위에 놓고 중심을 잡은 후 추가로 흙을 더 담는다. 탕탕 가볍게 화분을 들어 바닥에 쳐서 흙을 고르게 넣고 적당하게 채운다. 영양제 몇 알 같이 뿌려기도 하고 알맞은 조경석을 살살 깔아주기도한다. 듬뿍 물을 주고 화분을 닦아 통풍이 잘 되는 곳으로 옮겨주면 끝이다.


좁은 베란다에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조그만 화분 네 개를 만들었더니 땀이 좀 났다. 안쪽 구석에 떨어진 마른 잎과 가지들을 치우고 베란다 물청소까지 싹 끝냈다. 뒷마무리까지 다 해도 시간이 얼마 안 지났다. 이제는 꽤 손에 익어 뚝딱뚝딱 금방 해치운다. 그래도 작은 아이들이니 간단히 마무리했지, 큰 아이들을 옮겨심으려면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다. 식물 돌보는 것도 버거워서 다 치우고 최소한으로 가꾸시는 친정부모님이 생각났다. 나이 들면 식물 시중도 힘들어진다.


잎에 물방울 맺힌 아이들을 해가 잘 드는 곳에 올려놓고 각도를 달리해가며 사진을 찍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신 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걸테다. 식물 사진을 잔뜩 찍고 잠시 앉아 인스타에 새로 피드도 올린다. 나 혼자 뿌듯해서 비슷비슷한 사진을 잔뜩 찍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에는 뿌리는 났지만 새 잎과 줄기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금전수와 산세베리아 차례다. 나비란은 자구가 너무 많이 맺혀 처치곤란이고 페페도 사실 또 올라오는 아이들을 뜯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형광스킨도 꽤나 잘 자라서 조금 큰 화분에 심을까 생각 중이며 제라늄 가지 하나쯤은 삽목을 해야할 것 같다. 너무 더울 때는 피해야 하니, 초가을까지 기다려볼까.


앞으로 옮겨 심을 아이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급한 성격답게, '빨리' 옮겨서 '얼른' 안정되고 '후다닥' 새 잎을 내는 걸 보고싶다. 그 조바심으로 여러 식물을 죽이기도 했다. 아직 뿌리가 충분히 자라지 않았는데 서둘러 흙에 식재해서 결국 마르게 만든 적도 여러번이다.


식물은 내 조바심으로는 절대 키울 수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야한다.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정한다. 식물의 시간에 내 욕심을 맞춰야한다. 그러다보면 지금 당장의 결과가 급한 사람에서 조금씩 매일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나처럼 성급한 사람도 기다릴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식물을 좋아한다.


분갈이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