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주말 오후, 작은 아들과 체험형 공연을 보러갔다. 유초등 어린이를 위한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로 이뤄진 간단한 클래식 연주회와 악기체험 공연이었다. 선착순으로 모집된 30명은 대부분 중학년 이하의 자녀와 함께 하는 가족이었다. 초등 6학년 남자 아이는 아마도 우리 아들이 유일하지 싶었다. 쑥스러워 하는 아이를 달래 함께 악기별 체험을 마쳤다.
이제는 ‘아이가 원하는 체험’을 할 시간이었다. 시원하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층고가 높고 사방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카페는 시원한 개방감은 좋았지만 소리가 울려서 대화를 나누긴 조심스러웠다. 어차피 유니와 나는 대화를 하려는 게 아니니 상관없지만.
당연한 듯이 엄마 핸드폰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한 시간 동안 게임을 허락하고 음료와 빵을 주문했다. 아이는 새콤하고 쌉쌀한 맛의 자몽 셔벗을 시켜 온 얼굴을 찡그리며 먹고 나는 책을 읽으며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오물거리며 음료를 마시던 유니가 말했다.
"나 엄마 안 사랑해."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말했다.
"넌 왜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해? 너 엄마 사랑하잖아."
"엄마야 말로 왜 이렇게 망상증이 심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착각하잖아."
아이의 눈은 여전히 핸드폰에 고정된 체다.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툭툭 내뱉는다. 자식이란 참 신기하지. 저렇게 얄미운 소리를 하는데도 밉지가 않다.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질리지가 않는다. 보고, 또 보고, 계속 바라보고 싶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받지 못해도 괜찮다. 끝없이 주기만 하는 데도 억울하지 않다.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다는 걸 자식이 없었다면 몰랐겠지.
갑자기 혼자 사랑이 북받쳐 두 팔을 벌리고 아들을 졸랐다.
"엄마 안아 줘."
"돈 내."
"얼마나?"
"삼십만 원."
“그래, 낼게.”
“엄마 거지잖아.”
“지금 엄마 돈 없다고 걱정 해주는 거야?”
싱글거리며 되물었다. 아이가 ‘하아’하고 작게 한숨을 쉬더니 무심한 얼굴로 일어났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손발은 나만큼 커진 아이가 앉아 있는 내 어깨를 두 팔로 꼭 안아준다. 평소라면 사람 많은데서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인데 이게 웬일이람. 좋아서 나도 두 팔을 벌려 마주안았다.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려는데, "로딩 끝났다."하더니 팔을 풀고 건너편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사정이었군. 괜히 감동할 뻔했다.
게임하는 아이 옆에서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전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까는 어른스러운 표정이더니 더운 날 걸어서 그런 가 다시 아이 얼굴로 돌아갔다. 귀 옆으로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계단을 뛰어다닌다.
“엄마, 나는 눈이 잘생겼다.”
“누가 그래? 넌 코가 잘 생겼어.”
“아닌데, 난 마스크 쓰면 더 잘 생겨 보인대. 눈이 잘 생겨서. 5학년 때 우리 반 친구가 그랬다고.”
“아닌데 코가 더 예쁜데.”
“뭐래, 눈이 잘 생겼다니까.”
둘이서 눈이 더 예쁜가, 코가 더 예쁜가 실랑이 하는 중에 전철이 왔다. 사실 내 눈에는 아이의 눈도 코도 입도 다 예쁘다. 어디 하나 버릴 곳이 없다. 고 예쁜 입으로 안 예쁜 말만 하는 게 문제지.
집에 돌아와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냉동치킨을 에어프라이기에 돌리면 그럴듯한 치킨이 된다. 아이는 볶음밥을 해서 치킨윙을 주고 나는 캔맥주를 꺼내 남은 치킨과 함께 먹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날 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