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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23. 2023

아버지의 틀니와 사노 요코

 두 달 쯤 전, 올해 여든 둘이신 친정 아버지가 고생하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쓰던 틀니가 닳아서 잇몸이 아프고 음식을 드실 때 많이 불편해하신단다. 계속 참고 있다가 결국 다니던 치과에서 다시 틀니를 맞춘다고 하셨다. 괜찮은걸로 하시는지, 노인네라고 의사가 가격을 비합리적으로 받는건 아닌지, 제품은 괜찮은건지 걱정되어 동생과 시간을 맞춰 친정에 갔다.


  토요일 아침에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는데 따라 들어갔다.

의사에게 "좋은 재질로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내 말을 자르며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젤 싼걸로 해주시오."라고 하셨다. 한 자리에서 30년을 진료중인 노의사는 웃으면서 "잘 쓰시다가 불편하면 또 다시 하면 되지요, 그때 또 오세요" 라고 말했다.


  진료실에서 나와 결제를 하고 새로 이를 한 기념으로 아빠와 함께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밥을 씹고 김치를 삼키며 내내 마음이 묵직했다. 얼마 쓰지도 않을 틀니에 들어갈 돈을 걱정하며 남은 날을 가늠해보는 늙은 아버지가 애처롭고 짠해서,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해서.



 

 유방암 선고를 받고 여명이 2년 남짓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작가 사노 요코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대리점에서 재규어를 샀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크하고 솔직하게 글로 써내려갔다. 그의 에세이 [사는게 뭐라고]를 다시 읽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다.  마치 작가를 마주한 것 같았다.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싶다.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쓴다는  문장이 내게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녀는 말처럼 마지막 까지 자신답게 살다 갔다. 남은 생명이 얼마 안된 일흔의 할머니가 자신이 입을 예쁘고 세련된 잠옷을 잔뜩 사고, 엔틱한 문어 덩굴무늬 접시를 주문한다.


  그녀와 틀니를 아끼는 우리 아버지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간극이 있는걸까. 오랜 세월 몸에 베인 아버지의 검소한 생활태도는 존경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더 용기내시면 좋겠다. 사노 요코처럼 자신의 취향을 유지하고, 구입할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구비하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면 좋겠다. 여든 둘의 내 아버지도, 나도.

 

   나도 오래지 않아 사노 요코와 비슷한 또래가 되고, 또 아버지 나이가 된다. 그때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쌓여있으면 좋겠다. 노래, 꽃, 차, 책, 펜과 공책, 옷, 향초, 음식, 공간, 사람, 그리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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