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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14. 2023

그깟 김치가 뭐라고

팔순 친정 엄마한테서 일요일 오후에 전화가 왔다.

"배추 두 통 사다 김치를 좀 할라는데, 하는 김에 고기도 좀 샀는데, 와서 저녁 먹고 갈라냐?"

"어, 엄마 미안. 제가 일이 좀 있어서요. 11월 말까지 주말에 시간이 안나네. 수능 끝나고 갈게."

안그래도 둘째네 큰조카 수능 끝나면 동생과 같이 친정에서 하루 자고 올 생각이었고 나는 나대로 11월 말 까지 마감해야할 것이 있어 바빴다. 얼른 마무리해서 메일로 보내야할 일이 있어서 다음에 간다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엄마가 서운해 하는 걸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일이 급한 것을.


한 시간 쯤 뒤에 이번에는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와서 먹을 시간 없으면 손서방이 와서 가져가. 김치랑 수육이랑 챙겨줄게."

옆에서 듣고 있다 핸드폰을 채갔다.

"아니, 엄마 오늘 진짜 시간이 없다니까. 다음에 김장할 때 간다고. 그만 좀 해."

짜증을 부리며 전화를 끊었다.


김치가 뭐라고. 이렇게 자꾸 불러대는지. 나는 지금 끝내야할 일이 있다는데 자꾸 저러나 싶어 짜증이 나는데, 거실에 있던 큰 아들 까지 내 속을 긁었다.

"나도 나중에 엄마한테 전화오면 그렇게 말해줄까?"

나라고 짜증 부리고 싶어 부렸겠나. 가서 먹고오면 좋지만, 예배 드리고 와서 쉬지도 못하고 음식하는 엄마가 짠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답답해서 그러지. 마음 같아서는 등짝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째려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들어가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나, 6시 반쯤 되었는데 또 엄마가 전화를 했다. 받자마자 불퉁한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못간다니까요 엄마. 미안해. 다음에 갈께."

"아니, 그게 아니라. 아빠가 가지고 갔으니까 암 소리 말고 받아서 먹어."

이게 무슨 소리? 오늘 영하 4도 아니던가? 날도 춥고 교통도 불편한데, 여든 넷 넘은 할배가 김치통을 들고 전철타고 환승하고 버스를 타고 지금 오고 있다고?

"엄마! 왜 그래, 진짜 괜찮다니까요. 아 아빠 고생스럽게 왜 그걸 이 시간에 보내. 날도 추운데 왜 이래 증말."

서둘러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받자마자 내가 뭐라 할 줄 아셨는지, 전철안이라고 좀 있다 보자며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왜? 아버님이 갖고 오신데? 그럼 오신 김에 같이 저녁 드시고 가시면 되지 뭐 화를 내고 그래."

남편의 말에 마음을 가라 앉히고 아버지 드실 국과 술 한 병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모시고 오려고 아파트 공동현관으로 내려갔더니 무거운 보냉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추위에 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가 보였다.  

"아니, 아버지 전철역에서 전화라도 하시지 모시러 갈텐데. 여까지 걸어오셨구나. 추워요, 얼른 들어오셔."

"아니여, 바로 가야돼. 나 약속있어."

"약속은 무슨, 같이 드시자니까."

"어여 드가, 간다."


이러고는 한사코 가야한다며  붙집는 내 손을 뿌리치신다.  무슨 팔순 노인네가 그리 재빠른지, 따라잡지도 못하게 부리나케 온 길을 다시 돌아가셨다. 70년대 신파영화처럼, 오십 넘은 딸이 아빠를 부르며 따라가다 그냥 혼자 집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들어도 무거운 보온가방을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흐르는 눈믈을 닦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버님은 없고, 나는 울고 있고, 당황한 남편을 뒤에 두고 전화기부터 찾았다.


"엄마아, 진짜 왜그래에, 김치 안 먹어도 괜찮다니까 이 추운 날 아빠 고생시켜, 엄마도 힘든데 나 먹을 거 까지 챙기고 그러지 마, 안그래도 된다니까, 맘 아프게 증말. 미안하고 속상하단 말야. 어흐흐흐흑."

내가 언제 그리 아빠가 애틋했다고, 뭐 그리 아빠를 챙겼다고 추운데 문 앞에 두고만 가는 친정 아버지가 눈에 밟히고 혼자 다듬고 양념하고 절구고 김치를 해서는 플라스틱 통에 넣어서 챙겨준 엄마한테 미안해서 수화기를 붙들고 흐어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엄마한테 짜증부렸던 자신이 한심하고 화가 나서 더 눈물이 났다.


"알았어, 이제 안 그럴께. 너 한끼 편하게 먹으라고 그랬지. 어, 어, 울지마. 어여 밥 먹어."

나를 달래는 엄마한테 또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그런 나를 얼르는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전화를 끊고 부엌에 가서 그야말로 눈물 젖은 밥상을 차렸다. 식지 말라고 호일로 싸고 신문지로 둘둘 말아 가방안에 넣어주신 덕분에 고기는 아직 따끈했고, 갓 버무린 김치는 때깔이며 냄새부터 먹음직스러웠다. 큰아들은 할머니 김치 맛나다며 뜨신 밥에 고기와 김치를 올려 두 그릇을 뚝딱 비웠고, 나도 수월하고 편안하게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깟 김치가 뭐라고 부모님들이 이리 고생하시나 싶어 울컥했지만, 그 김치를 먹으며 이렇게 살고 있어서, 이 나이 먹도록 눈물 콧물 흘려가며 배부르게 먹어서, 감사하고 그보다 더 많이 죄송했다.


그야말로 그깟 김치, 마트에서 사다 먹어도 되는 김치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는 세상에 다시 없을 귀하디 귀한 김치 몇 포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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