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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30. 2023

사실은 식물이 나를 돌봅니다

겨울에도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이 있어 글로 다 풀어내지 못할 위로를 얻는다.

꾸준히 새 잎을 피워내서, 옮긴 화분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서, 새로운 자구를 만들고 번식을 해서, 모양도 색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으로 부족한 생명을 느끼게 해줘서, 바라보고 돌보면서 평화를 느낀다.


고무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는데, 화분에 흙갈이를 한 번 해줄까 싶어서 인삼고무나무를 옮겨 같이 심었다. 올 초 급작스런 추위로 냉해를 입어 두 가지만 잘라 물꽂이해두었던 금전수도 흙으로 옮겨 심고, 그 김에 이제 빨갛게 물들어 갈 남천도 예쁜 토분으로 옮겨주었다. 때로 옷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듯, 화분도 단순한 용기 이상으로 식물의 가치를 드러내준다. 

이렇게 몸을 움직여 화분을 정리하고 잎을 매만지고 영양제를 뿌려주는 것이 꼭 시중을 드는 것 같아 '식집사'라는 표현도 쓰지만 그건 온당치 않다. 식물들을 보살핀다고 하지만 돌봄을 받는건 사실 식물이 아니라 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생명과 성장을 보여주는 식물들을 보며 위안과 평안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휴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 식물들을 가꿔도 내가 더 남는 장사다. 게다가 이렇게 글로 쓸 소재까지 얻고 식물자랑까지도하니 남아도 많이 남는거다. 


자랑하는 김에 새로 나는 잎들도 올려야겠다. 내가 잘 돌봐서라고 나를 칭찬해달라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지만, 잘자라주어서 고맙다는 인간의 마음 표현이 더 크다. 이런걸 옛부터 팔불출이라 불렀다. 요즘엔 뭐라고 하려나.



 우선 가을에 새로 들어 온 아스파라거스. 폐업하는 꽃집에서 수형이 안 예뻐 끝까지 남아 있던 아이다. 50% 할인인데도 구석에 남아있던 아이를 데려와 키우고있는데, 어느새 여리디여린 새 잎을 펼치고 있다.


살아주어 정말 고마운 디펜바키아도 있다. 내 키보다 크게 자라 휘청이길래 과감히 목대를 잘라 바로 흙에 심고 키웠다. 잘라서 심은 아이는 잘 뿌리내리고 새 잎을 무럭무럭 내고 있고, 잘라낸 가지말고 새 순을 낸 아이는 커다란 잎을 마구 올리는 것도 부족해 가지 끝에서도 순을 내었다. 아들 여드름처럼 조그맣게 굵은 목질을 뚫고 나오더니 조금씩 조금씩 커져서 볼롯 솟아났다. 가끔 들여다보면 자라있고, 또 지나서 보면 나와있고. 그렇게 자라서 드디어 엄지손톱만한 첫 잎을 냈다. 뒤이어 아이 손바닥 만한 두 번째 잎이 나오고 세 번째, 네 번째 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매일의 기적을 선사해준 아이다. 


죽은 줄 알았던 라일락도 포기하지 않았던 내 마음을 알아주듯 가지 끝에서 새로 잎을 틔웠고 겨울을 잘 보내면 봄에는 다시 꽃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다. 페페와 고사리, 마리안느, 아이비, 만리향, 산세베리아도 무성하게 잘 자라는 내 기쁨이고, 점점 커져가는 여인초와 미모를 뽐내는 알로카시아 드래곤스케일은 내 자랑이다. 홍콩야자와 몬스테라도 멋들어지게 자라고 있는데 적당한 사진이 없다. 조금 아쉽다.


이렇게 잘 자라는 아이들 틈에서도 시름시름 앓거나 마르거나 뿌리까지 상해 죽어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랜디제라늄과 아이비제라늄, 두 제라늄을 보냈다. 예쁘게 꽃 피우고 잘 자라고 있었는데 살라질 못했다. 아랄리아는 하나하나 벌레를 다 잡아가며 살려서 다시 신엽을 내는데, 셀렘은 도무지 벌레의 습격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칼란데아 두 종류는 분갈이 후에 여전히 몸살 하느라 잎이 뻗지를 않는다. 이런 아이들을 볼때마다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쓸쓸하고........ .

이렇게 사진으로 정리해보니 새삼 눈이 환해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식물테라피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지금같은 마음으로 민원업무를 처리한다면 무척이나 친절할 것 같은 상태같다. 남편이 술에 취해 외박을 한다해도 웃으며 용서해줄 것 같은 상태, 마지막 남은 술 한 잔도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아들이 전교 꼴등인 성적표를 받아와......는 상상만 해도 화가 난다. 안되겠다, 다시 초록 사진을 보고 이너피스를 되찮아야지. 


이렇게 반짝이는 초록을 보며 오늘도 마음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세상도 온통 초록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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