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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25. 2023

김치도둑

김장철이라 여기저기 집마다 김장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브런치에서도 김장관련 글들이 연이어 메인을 장식했다. 늙으신 부모님과 함께 김장을 하며 노동보다 화합을 느꼈다는 글부터 독립군처럼 자신의 손으로 김장을 치뤄낸 뿌듯해하는 글, 먹을 수 없는 김장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 타국살이 글, 이제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는 젊은 세대의 글까지 다양한 글들을 연이어 올라왔다. 하나씩 읽어가며 김장이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나 역시 김장을 하며 일 년 먹거리를 준비하는 친정엄마와 함께 김장이라는 거사를 치뤘고 그에 관한 글도 썼지만 사실 김장철마다 떠올리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40년이 지나도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겨울 김치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날, 번번이 사업이 망하고 하는 일이 잘 안되던 아버지 대신 엄마는 하루종일 가게를 꾸리며 다섯 식구 생계를 책임져 왔다. 아빠는 일 찾아 보름이나 한 달씩 지방 현장에 내려가 있는 일이 잦았고 엄마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늦은 저녁에야 돌아왔다. 일이 많으면 한밤중에 돌아오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린아이 셋이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했다. 배달음식은 물론이고 끓여먹을 라면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저녁거리를 사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고 그럴 돈도 없었다. 맏이라고 내가 부엌에서 엄마가 해놓은 밥과 반찬을 꺼내 차려서 간단히 두 동생과 함께 먹었다. 물론 배가 고프더라도 엄마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날이 더 많았지만.


당시엔 집집마다 땅을 파서 김칫독을 묻어두고 그 김칫독에 김장김치를 보관했다. 마당이 없는 집 사람들은 가장 추운 곳에 항아리를 두고 거기서 김치를 보관해야했다. 우리가 세들어 살던 5층짜리 주공 아파트(지금의 LH) 사람들은 김칫독 대신에 작은 항아리에 김장김치를 넣어 계단참에 올려두고 꺼내먹었다. 저녁 무렵 계단을 올라 집에 가는 길에 층마다 작은 바가지를 들고 나와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가는 엄마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럴때면 집마다 다른 손맛과 양념 덕에  다른 냄새가 풍겼다. 어느 층은 젖갈의 강한 향이 나고, 어느 층은 시원하고 달큰한 향이 났다. 김치들은 항아리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 같았다.


아마도 12월이나 1월 즈음, 김장이 끝나고 난 한 겨울이었을거다. 기다려도 엄마가 오질 않고 배는 고파서 동생들과 같이 밥을 차려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밥은 있는데, 집에는 반찬이 보이질 않았다. 김치라도 있으면 밥을 먹을 텐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쩌나 고민하던 그때, 앞집 김치 항아리가 떠올랐다. 고민은 짧았다. 잠시 후 나는 다른 아주머니들처럼 한 손에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맨발로 계단을 내려갔다. 조용히 항아리 뚜껑을 들어 옆으로 치워놓고, 비닐을 풀었다. 안에서 달큼하고 매콤한 김치 냄새가 확 끼쳤다. 한 쪽 팔의 소매를 걷고 팔을 넣어 항아리에서 김치 한 쪽을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양념이 묻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최대한 원래처럼 수습한 뒤 후다닥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그 날 먹은 김치는, 아삭하고 시원했다. 정말로 맛있었다. 


그 뒤로도 조그만 김치도둑의 도둑질은 몇 번 더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과감해져서 옆에 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서 양념이 잘 베인 총각김치도 집어오고, 안 쪽으로 팔을 뻗어 양념이 잘 베인 배추를 골라 꺼내오기도 했다. 여전히 동생들은 내가 문밖을 나가 꺼내오는 김치의 정체를 몰랐다. 어디서 생긴 김치인지도 모르고 그저 잘 먹었다. 훔쳐온 김치는 맛있었지만 먹는 내내 얼굴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김치를 훔치러 가기 전에도, 훔치면서도 그랬다. 나쁜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들킬까봐 마음 졸이였다. 저녁에 옆집 아주머니가 김치를 가지러 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마음을 쓰기도 했다. 


간 큰 김치도둑의 범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김치는 점점 맛이 들어갔고, 김치가 익을수록 앞집 항아리 속의 김치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저녁, 여기서 김치를 가져가면 없어진 티가 확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뚜껑을 닫았고 더는 앞집 김치항아리 뚜껑을 몰래 열지 않았다. 김치도둑이 손을 씻은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도 뒤늦은 양심의 활약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더 하면 위험하겠다는 약삭 빠른 계산의 결과였던거다. 그렇게 어린 김치도둑은 자신의 잘못을 기억에서 덮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앞집 아주머니는 김치가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 같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하는 짓인데, 김치를 꺼내며 양념국물을 흘렸을 수도 있고 뚜껑이나 항아리에 고춧가루를 묻혔을 수도 있었을거다. 살림하는 사람이 자기가 정리해뒀던 비닐이 다르게 풀어헤쳐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를 수가 없을 것 같다. 충분히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 같다. 아무리 어린 아이 손이라 해도 김치양이 줄어드는 것도 알았을거고 그러니 분명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거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알고도 눈감아주신 걸지도 모른다고. 



어릴 때, 앞집 김치를 훔쳐 먹은 적이 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에다 어린 날에 대한 자기연민이 더 해져 오래  묻어두고 살았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앞집 아주머니는 그때 그 김치도둑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까? 

눈 덮인 성탄 아침, 고요히 기도한다. 뒤늦은 고백, 용서, 감사, 그 모든 것들이 가득한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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