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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01. 2024

용띠 동생과 소띠 언니의 연대기

새 나무 책상과 중고 철제 책상의 깨달음

  나는 소띠다. 한 겨울에 태어난 소라서 일도 안하고 외양간에서 여물만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세 살 밑에 여동생은 용띠다. 내게 게으른 겨울 소라고 말하던 부모님은 동생에게는 10월의 용은 태풍이 지난 다음이라 기운이 세고 사납다고 하셨다. 올해가 푸른 용의 해라는데, 청용이건 흑룡이건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기가 세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MBTI도 안 믿는데 띠별 운세나 성격을 믿을리 없지만, 초식동물인 소띠 언니보다 훨씬 더 야무지고 똑똑한 성격의 동생이 강렬한 이미지의 용띠라는건 너무 잘 어울렸다.

  한 번은 동네에서 관상을 보던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 얘기하셔서 기분 좋아진 엄마가 달라고도 안한 복채를 쥐어주신 적도 있다. 그 아주머니 말처럼 장군은 되지 못했지만, 대장은 확실했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동네 꼬마들을 다 몰고 놀러다닌 '골목대장'이었으니까.

동생은 대여섯살 무렵부터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노릇으로 유명했고, 어른들한테도 할 말을 똑부러지게 다 해서 어른들한테서도 유명했다. 엄마 가게가 있던 시장사람들은 다 우리 엄마를 동생이름을 붙여 '무니엄마'라고 불렀다. 보통 엄마들끼리 서로를 부를 때 큰 애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우리집은 반대였다. 다들 둘째 이름만 알고 내 이름은 몰랐다. 그 정도로 동생은 기운이 넘쳤고 그에 비례해 나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게 똑부러지고 사람들을 휘어잡던 동생이 드디어 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나는 4학년, 이젠 공부를 시작해야하는 학년이었다. 하지만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던 나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요즘말로 '아싸'였다.  숙제를 제대로 해간 적도 없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도 않았으며, 시험 성적도 고만고만했다. 사실 구구단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용모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눈치도 없고 착하지도 않았다. 사회성도 부족해서 친한 친구도 없이 책만 읽고 공상만 했다. 교과서엔 온통 낙서투성이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대서 무슨 과목 교과서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가끔 혼자 앉아 그리던 그림을 보고 반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며 다가온 적은 있었지만,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동생은 1학년 때부터 선생님과 친구들의 주목을 받았다. 성적도 뛰어났고, 운동, 그림, 노래, 글짓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누가 챙겨주지도 않았는데 집에 오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숙제부터 했다. 얼마되지 않아 선생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반 아이들이 함께 놀고 싶어하는 친구, 학급의 분위기를 이끄는 아이가 되었다. 온갖 분야의 상장을 받았고 학기말에 받아오는 성적표에는 장점과 칭찬의 말이 가득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반장을 도맡았다. 그야말로 전교에 이름을 날리는 그림같은 아이였다. 부모님이 차별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예민하고 우울했던 나는 동생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어른들의 신뢰와 칭찬을 받는 동생, 늘 친구들이 가득한 동생,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동생. 모르려야 모를수가 없을만큼 나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열 두어살 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이 열등감으로 가득차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얼해도 뛰어난 동생을 둔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니는 어디서나 손에 잡힐 것 처럼 선명한 열등감을 달고 살아야했다. 그리고 그건 꽤나 진득하고 무거워서 어린아이가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진해질 뿐이었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네가 무니 언니구나"라며 아는 척 하신 선생님이 있었다. 그 뒤에 덧붙이지 않은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저러는데, 언니는 왜.....'   


  그렇게 3년이 지나 아마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지 싶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데 그래도 공부할 책상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이 책상을 하나 사주셨다. 그때까지는 바닥에 책을 펴고 엎드려서 공부하거나 밥상에 앉아 공부를 했었다. 처음으로 생긴 책상, 그것도 내 책상이었다! 나무냄새인지 접착제 냄새인지, 새 제품 냄새가 나는 책상을 방 한 구석에 놔두자 왠지 의젓한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의자에 앉아보고 서랍을을 열었다 닫아 보며 설레어했다. 가장 짜릿한 점은 나만 책상을 갖게 됐다는 점이었다. 두 동생들은 새 책상을 부러워하며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제일 좋았다.

  언니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자 동생도 자기도 책상을 갖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연달아 새 책상을 두 개나 사들일 수 없었던 부모님은 여러모로 곤란해 하셨지만 내심 공부 잘 하는 작은 딸에게 책상을 사주고 싶어하셨을 거다. 그러던 차에 마침 누군가 쓰던 철제 사무용 책상을 하나 얻게 되셨다. 잘 닦아서 내 책상 옆에 놔두고 동생 쓰라고 주시면서 새 것을 사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과도한 칭찬과 자랑으로 덮으셨다.

"이 책상이 완전 튼튼해, 게다가 짠, 이거는 서랍을 열쇠로 잠글 수 있다, 좋지!"

  바라던 새 책상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빠른 동생은 이 책상이 최선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냥 받아들였던거다. 문제는 모자란 나였다. 동생에게도 새로운 책상이 생기고, 거기다 아빠가 장점을 줄줄이 늘어놓자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동생의 중고 철제 책상이 더 좋아보였던거다. 순간 시샘하는 마음이 생겨서 "아빠는 무니만 좋은 거 사주고."라고 말해버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동생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동생은 지긋이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그럼 바꿀래?"라고 물었다. 어린아이라도 눈빛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물론 읽을 수도 있고. 나는 무안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동생에게 패배감을 느꼈다. 그저 동생이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자존심이 상해서 갖는 열등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나는 저 아이보다 부족하구나, 나보다 동생이 훨씬 뛰어난 사람이구나, 하고 통렬하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없고, 얄팍하게 자기 욕심만 생각했다는 자신에 대한 성찰  이전에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내 그릇이 더 작다는 것이 열 세살의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부끄러웠다, 많이. 아마 일본 소년만화라면 이 순간에 이런 대사를 읊조리지 않을까. '졌다.......'

  

  동생을 향한 열등감은 중학생이 되어 성적이 오르면서 많이 옅어졌지만, 이 날 느낀 부끄러움과 열패감은 사춘기와 성장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더 선명해 졌다. 그리고 그 기억은 채찍이 되어 내가 더 반성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동생이 부러운 것은 부럽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동시에 동생과 내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긍정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동생의 인생과 내 인생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자 오래된 열등감이 나를 좀먹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늙어가고 있다.

 지금이라고 내가 동생보다 성숙한 어른인가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은 부끄러움 투성이 인간이다. 그러나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것을 들여다보고 부끄러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 하고 같은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계속해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나를 긍정하는 이유다.


ps -  용띠, 내 동생은 고대로 잘 자라서 누구보다 멋지게 자기 의지로 자기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 내게 언니같은 동생이고 부모님들에겐 아들노릇하는 믿음직한 딸이며 멋지게 가정을 꾸리는 엄마다. 게다가 나보다 좋은 대학을 갔고(당연히!), 나보다 훨씬 부자고, 나는 평생 갖을 수 없는 딸도 있다!(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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