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꾼인 이유, 비오는 날 흙냄새, 겨울 냄새를 맡지 못하는 어른
나는 자타공인 술꾼이다. 즐겨, 자주, 많이, 마시고 또 알딸딸함을 사랑하니 꾼이라 부르기 모자라진 않을 터다. 하지만 B급의 술꾼이라 자평하는 건, 술 맛 자체로 먹을 때보다 안주가 좋아서 술이 당기는 때가 많은 탓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을 떠올려보자.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보기 힘들지만, 여름이면 길가에 하나 둘 내어놓은 테이블에 앉아 아삭한 치킨무를 옆에 두고 기름에 갓 튀겨 온 치킨 뜯고 있는 사람들! 조금 탄 듯하게 바싹 튀겨진 껍질을 뜯어 입에 넣는 순간, 크아!
한 고비를 넘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치킨의 유혹을 넘기고 골목을 돌아선 순간, 지글지글지글 곱창 기름이 녹으며 양파와 부추가 익는 소리가 들린다. 곱의 꼬수운 냄새에 양파의 달큰함과 부추의 향취가 더해져서 지나가는 발걸음을 때기 힘들게 만든다.
아, 이러니 내가 술꾼인 것은 식탐 때문이라기보다 줏대 없이 약한 콧구멍 때문이다.
어쩐 일로 낮에 엄마가 집에 있었다. 한낮에 엄마와 함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덕에 마음이 몽글해져있었고, 때마침 비가 내렸다. 어느 여름날이었을 거다. 베란다 문을 열고 가만히 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엄마, 비와. 난 비올 때 나는 흙냄새가 참 좋더라.”
엄마는, 방바닥을 닦거나, 부엌정리를 하고 있었을 거다. 그도 아니면 다림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여상한 목소리로, “그게 무슨 흙냄새니 먼지 냄새지. 진짜 흙냄새 맡아본 적 없지? 문 닫아, 먼지 들어와.”라고 했다.
먼지 냄새라고? 이게 비 냄새, 흙냄새가 아니라 먼지 냄새라고?
사소한 깨달음과 허탈감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알던 흙냄새가 가짜라고 판명 받은 듯 해 괜히 서글퍼졌다. 아, 이건 땅 위의 먼지가 비 때문에 날아올라 나는 냄새였구나.
동시에 진짜 흙냄새가 어떤 걸지 궁금해졌다. 저 남쪽 시골 마을에서 소 몰고 다니다 강물에 멱 감고 살았던 작은 계집아이가 아는 진짜 흙냄새는 어떤 걸까? 도시의 먼지 냄새와 얼마나 다른 건강한 냄새일까? 강한 호기심과 부러움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가끔 비 오는 날이면 그때 엄마 옆에서 맡았던 먼지 냄새와 아직도 맡아보지 못한 진짜 흙냄새 생각이 난다. 엄마만 알고 있는, 나는 모르는 진짜 흙냄새. 언젠가 맡아볼 수 있을까? 맡아보지도 못한 냄새가 하냥 그리워진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던 아이가 외쳤다. “엄마, 겨울이 오나 봐요. 겨울 냄새가 나요.”
11월 이었다. 갓 10살을 넘긴 아이는 어떤 종류의 냄새인지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겨울에 맡을 수 있는 냄새, 라고만 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는 태어났을 때가 가장 넓고 이 후 점점 좁아진단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신생아가 듣는 소리만큼 폭넓게 듣지 못한다는데.
냄새도, 그런 것 같다. 어린 아이들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어릴수록 더 깊고 풍부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자라며 점차 후각도 퇴화되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며 내가 놓쳐버린 세상의 온갖 향기들을 그리워한다. 기억도 못하고 사라진 향기들, 맡을 수 없는 향기들, 그러나 여전히 공기 중을 떠돌고 있을 냄새 입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