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책모임 하던 중이었다. 각자 감당하고 있는 시련속에서 경험한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가며 서로가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깊이 경청하고 공감하며 들었다. 듣다보니 최근에 내가 격은 일이 떠올랐고, 말하지 않곤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아들에게 새로 배운 아재개그를 아들에게 들려주던 저녁이었다.
아들, 맨날 지각하는 과일이 뭐게?
지각?
어, 약속에 맨날 늦어.
사과?
사과 아니구, 네가 친구랑 약속했는데 늦게 가면 그 친구한테 뭐라고 말하지?
잠깐 뜸을 들인 아들이 약간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미안.
아, 그 순간 내 마음에 작은 바람이 불어들었다. 그렇구나, 너는 늦으면 친구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전하는 아이구나. 너를 기다릴 친구에게 사과부터 하는 다정하고 선량한 마음을 지닌 아이구나. 그런 아이가 내 작은 아들이구나. 그 저녁 아이와 나눈 별거 아닌 대화에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윤아, 엄마는 네가 엄마 아들이라서 참 감사하다.
뭐래
무심한 표정으로 답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될거라는 걸 알았다.
비록 그 날 저녁 식탁위에 올라온 메추리알을 먹으며 메추리알이 부화하면 뭐가 되는거냐고 묻는 아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밥 먹다 아는게 없다는 형의 놀림을 받아도 머쓱하게 웃는 순진무식한 아들과의 일상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시련을 담담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