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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14. 2024

소년이 왔다

작가 한강은 1980년 광주의 오월을 다룬 소설에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소년이 오다도 아니고 왔다도 아닌 '온다'라고. 노벨상 수상 연설 '빛과 실'에서 말했듯이 죽은 자가 산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우리에게 그 날을 말하기 위해, 기억하고 잊지말라고 전하기 위해 현재진행형으로 소년이 오고 있다. 소년이, 온다.



지난 주 화요일, 12월 3일에 지역의 도서관에서 [소년이 온다]로 독서토론회가 열렸다. 삼삼오오 소그룹을 만들어 서로 토론하고 발표한 뒤에 강사의 해석을 더한 강독까지 이어지는 자리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소설을 읽으며 느낀 감동과 슬픔을 나누고 논제에 대한 각자의 답을 이야기했다. 


진지한 대화로 책에 대한 서로의 해석과 감상을 말하던 중에 자연스레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지금 그날의 광주에서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것인가와 그렇다면 그때 무력으로 진압했던 군인들처럼 지금의 군인들도 그렇게 행동할까, 하는 질문이었다.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나누고 싶었다.  


첫 번째 질문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80년대 보다는 훨씬 개인의 이익과 가치를 중시하는 면이 있어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것 같다, 적극적으로 투쟁하지는 않을 것같다는 견해가 조금 더 많았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과거에는 대의를 위해 각자의 가치를 드러내지 않고 참아야했다. 지금은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정의를 주장하는 시대가 되어 그렇게 보일 뿐, 인간의 기본적인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생긴다면 모두가 저항할거라고 본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태, 동물권, 페미니즘, 성적지향, 장애 등등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혼재하고 있어서 이기적으로 보일 뿐, 이 갈등들이 더 성숙해지는 과정이 될거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두번 째 질문에는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는 답변 많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말하는 분들도 계셨고,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것을 성토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군인들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까 회의적인 모습이었다. 그에 대한 내 의견은 그때와 달리 군부의 머리는 변하지 않았더라도 팔다리에 해당되는 개별 군인들이 보다 더 회의하고 고뇌하고 의심할 것이라고 믿고싶다. 그때와 다른 '개인'들이 자기 자리에서 저항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천천히 씻고 나오는데 남편이 뉴스 좀 보라며 나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고갔다. 뉴스에서는 윤석열이 나오고 있었고 계엄이라는 자막이 달려있었다. 가짜뉴스가 아니었다. 진짜로 2024년 12월에, 계엄을 선포한거다. 

소름이 돋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상상거리도 안 되는 상상이라며 웃으며 나눈 얘기가 눈 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거실에 주저앉아 남편과 함께 뉴스화면을 보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했다 카톡창을 확인하는데 12시가 다 넘어갔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고 시민들이 몰려들고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안으로 쳐들어갔다. 국회에서 계엄철회 처리까지 보는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12월 3일 이후로 일주일하고 나흘이 지났다.

그 사이 상부의 명령에 따르지만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군인들을 보았고(한강 작가도 언급했듯이!),

적극적으로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젊고 어린 세대(그것도 더 많은 여성들이!)를 보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12월 14일 오늘, 탄핵이 가결되었다. 204표. 어리석고 무능하며 불의와  망상에 쪄들어있는 자를 국민이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뒤로 작가 한강이 살려낸 동호의 어린 숨결이 흘러가고 있었을까. 그렇다, 소년은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있었던 것이다. 여의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그저 글을 적으며 눈물흘리는  중년의 나에게도 쉬지않고 다가와 함께했던 것이다. 

소년은 이미 와 있었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로.

소년이 왔다. 


오늘 국회앞 항공샷 -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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