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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0. 2021

이단의 편지를 받았다.


퇴근하며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들어오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공동현관문 비번을 열고 들어서는데 우리집 우편함에 편지가 꽂혀있었다. 이사하고 일년 동안 고지서 말고는 뭐가 꽂힌 적이 없는 우편함인데 편지라니. 낯선 하얀 편지봉투가 눈이 부셨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꺼내보니 규격종이봉투에 손글씨로 보낸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모르는 이름이었다. 아랫쪽 받는 사람에는 우리집 주소가 정확하게 적혀있는데 사람 이름은 없었다. 우리집으로 오는 편지는 분명한것 같지만 무슨 편지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우체국 소인 밑에 반송불요라고 까지 제대로 적혀있는 편지가 왠지 모르게 수상쩍어서 다른집 우편함을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이미 다 가져간 것인지, 우리집에만 온 것인지, 내가 받은 것과 같은 편지는 안보였다. 아무래도 무슨 홍보물이지 싶었지만 손글씨로 적은 편지는 정말 오랜만이어서 애틋한 마음에 버릴 수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한테 물어봤다. 남편 역시 짐작가는데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광고전단일거라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장본 것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궁금한 마음에 편지부터 뜯어보았다. 봉투를 뜯자 안에서 예쁘게 모양을 만들어 네모나게 접힌 편지지가 나왔다. 정성껏 접은 것이 분명한 형태의 종이를 펼쳐보았다. 예쁜 이미지가 그려진 편지지엔 작은 글씨가 가득했다.



...............종교권유였다.

기대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하느님의 나라, 하늘에 정부, 세계상태 등등 단어들이 적혀있었고 마지막에 친절하게 웹사이트 주소까지 쓰여있었다. 아, 이단이구나. 불순한 것을 만지기라도 한듯 순간 기분이 찜찜해졌다. 정체나 알자싶어 사이트 주소를 검색해보니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병역거부로 많이 알려져있고 삼위일체와 예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기독교 계열의 이단 종파다. 내친김에 보낸 사람 주소도 검색했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보낸 전도용 편지가 우리 집으로 왔다.



요즘은 이렇게 비대면으로 종교권유를 하나보다. 손글씨 편지봉투에 설레서 들고 들어온 내가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여호와의 증인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집 주소만 적어서 손글씨로 일일이 편지를 써서 보내기까지 하는 보낸 이의 믿음을 생각하자 놀라웠다. 한 글자씩 눌러서 쓰고 있는 중년 여인, 그녀의 순종에 조금 감탄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주소를 넣어 우체국에서 부쳤을까. 같은 내용을 몇 장씩 써서 똑같이 보내도 될텐데 손글씨로 옮겨 적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교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종교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르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나 역시 내 삶을 겸허히 내려놓지 못하고 내 의지대로 살 때가 더 많다. 이단의 편지를 보고 신앙인으로서 하루하루 사는 데 바빠 신의 뜻을 분별하는데 게으른 내 모습을 절로 반성하게 되었다. 말뿐인 종교인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내는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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