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Feb 08. 2024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난 주 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친정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고 있다. 운전을 못하는 딸인지라 엄마 집 근처 병원을 검색했고, 다행히 지하철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에 적당한 병원이 있었다. 나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된다. 


두 번째 진료날, 전철역에서 엄마를 만나 함께 병원으로 올라갔다. 지난 주만 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엄마가 두 번째라고 조금 여유있어 보였다. 한결 편안한 게 진료를 받고 나와 전철을 탔다. 목적지에 내렸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안한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해 방금 진료를 마친 팔순엄마가 계단으로 올라가기에 무리라고 생각해서 뒷쪽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와 엄마까지 들어가자 그야말로 발디딜틈 없이 없이 꽉 찼다. 사람들은 몸을 움추린 채 각자 시선을 돌리며 서있었다. 엄마가 불편해하시려나 고개를 돌리려는데, 내 앞에 선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모든 사람에게 다 들리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젋은 사람은 좀 내려서 걸어가지, 왜 엘리베이터를 타나."


예상치 못한 타인의 불쾌감이 내게로 똑바로 쏟아져왔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적의였다. 나 말고 다른 젊은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머리가 제일 검었다. 분명 나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왔다. 꼭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 어머니 모시고 가느라 그래요, 죄송합니다."


그 분을 향해서인지,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계신 다른 분들에게 한 말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웃으며 얘기했다. 겨우 한 층 올라가는 동안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아주머니 옆에 서 계시던 분이 작지만  '그런 소리 하는거 아니에요. 다 알아서 하는거지.' 라고 말하셨다.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나보다 먼저 짐을 들고 타신 분이었다. 그러자 내 뒤에 서 계신 분도 '젊은 사람이어도 아플 수도 있고 다 사정이 있는거지. 그런거 말하고 그러는거 아니에요. 그러면 안돼지'하고 또렷하게 말하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누구신지 바라보았다. 점잖아 보이는 표정에 곱게 화장까지 하신 분이었다. 60 중반은 넘었으리라. 뒤어어 조그맣게 여기저기서 그럼, 하며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혹은 일상생활속에서 젊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노인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게시판에도 어른스럽지 못하고 그저 물리적 나이만 많은 노인들 덕에 겪은 불쾌한 경험 이야기도 종종 올라온다. '라떼는'과 '요즘 것들은'으로 무장한 꼰대가 넘쳐나고 자기 안에 매몰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가 편협해지는 요즘인데,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보는 어른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났다. 마음 한 곳에서 부터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말할 수 없이 따뜻해지는 이런 마음을 무어라 말해야할까. 눈의 여왕속 한 장면 처럼 가슴에 박힌 얼음 조각이 녹아내리는 기분, 미묘하게 마음이 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 누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몇 초간이 지나고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1층에 도착했다.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리고 안의 공기도 밖으로 흘러나갔다. 천천히 엄마 손을 잡고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의 온기는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빠져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 아, 그러고보니 젊은 사람으로 불렸구나. 내가 동안이긴 한가보다. 



이전 15화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고우면 인어공주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