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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30. 2023

탐욕의 맛을 추구합니다.

  아마도 미드 [멘탈리스트]로 기억한다. 범죄 현장을 보고 범인의 심리상태를 파악해서 진상을 밝히는 드라마다. 어느 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범죄현장을 살펴본 주인공이 용의자 중 요리사를 범인으로 특정한다. 범인은 매우 탐욕스런 성정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당연하게 요리사의 자백과 체포로 끝을 맺는다. 도저히 주인공의 추리를 따라잡지 못한 형사가 묻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이 언제나 경외와 감탄을 담아 묻는 바로 그 질문을 듣자마자 주인공이 대답한다. “요리에 버터를 너무 많이 넣더라고.”      


  탐욕스런 범인의 성품과 범죄를 연결하는 혜안을 지닌 그가 오늘 내가 먹은 토스트를 봤다면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을지도 모르겠다. 잘 구운 식빵 위에 듬뿍듬뿍, 드음뿍 스푼으로 가득 뜬 딸기잼을 올리고 그 위를 이불 덮듯 빵으로 살포시 덮는다. 바삭한 빵과 진득한 잼이 한 번에 씹히면서 입안에 들어오면 달달한 잼을 한 입 먹고 빵을 살짝 곁들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거기에 커다란 머그컵에 가득한 커피를 곁들이면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 같은 행복감이 온 몸으로 퍼진다. 어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구워준 핫케익에도 버터를 두 조각이나 올리고 시럽을 핫케익을 다 덮을 정도로 뿌려서 내놨다. 이정도면 검소와 절제를 신조로 삼았던 중세 수도사들 눈에는 죄악 덩어리로 보일런지도.      



  맛의 과잉, 탐욕의 죄악에 빠져 사는 사람답게 즐기는 음식들도 단짠단짠 매콤달콤하다. 메뉴들도 그렇지만 음식의 간을 봐도 그렇다. 회를 먹어도 간장이 아니라 새콤달콤한 초장을 듬뿍 찍고 마늘 고추를 올려 먹는다. 5년 쯤 겨울, 직장동료들과 추어탕을 먹으러 갔을 때 일이다. 각자 취향대로 들깨가루와 부추, 산초가루를 넣어 서로 다른 맛의 국물을 만들었고, 서로의 취향은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며 조금씩 덜어 맛을 보았다. 내 뚝배기의 탕을 먹은 동료들이 다들 한 목소리로 외쳤다. “과해!” 세 명의 공통된 평가는 ‘과하다.’였다. 지금껏 과한 맛을 추구하며 살아왔음을 인증 받은 날이었다.      


  가볍고 산뜻한 맛보다 진하고 걸쭉한 맛을 즐기며 살았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어느 날 부턴가 감정이 요동칠 때의 환희처럼 머무를 때의 평온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싸한 나박김치보다 슴슴한 맛의 동치미가 땡기고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만큼 기름 쫙 빼고 새우젓 살짝 찍어 먹는 수육도 맛나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직 씁쓸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는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절제의 맛을 경험하고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입맛도 성숙해 지는 거라고 포장하기에 켕기는 구석이 많다. 뭉근하고 미지근한 맛까지 즐기겠다는 욕심, 탱탱한 탄력의 맛에서 밍밍한 느슨함의 맛까지 넘보는 탐욕의 확장이 아닌가 싶은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맛에 대한 한참 말을 꺼내고 보니 어째 어색하다.  예민하지 못한 미각 때문에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입맛이면서 뭘 안다고 맛을 말하나. 조금 우습다. 다양한 맛과 탐욕, 미각에 대한 성찰은 아직은 무리다. 그저 매일 맛나게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있으니 감사해야할 뿐. 더 중요하고 긴급히 생각해야할 문제는 따로 있다. 내 탐욕 덕분에 무서운 기세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지방세포 고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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