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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5. 2023

파를 먹으면 어른이라는 가설에 대해

국민학교 6학년, 하교 후에 동네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떡볶이를 먹던 날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간식으로 해주신 떡볶이를 먹고 있을 때였을까?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떡볶이를 먹고 있었고, 어묵인줄 알고 입에 넣은 흐물거리던 그 물체가 실은 대파조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하며 컵을 찾긴했지만 이전과 달리 바로 뱉어내지 않았다. 씹다보니 은은한 단맛이 나와서 먹을만 했고 곧 떡볶이 양념과 함께 삼켰다. 세상에 파를 먹다니, 처음이었다. 삼키고 생각했다. "파를 먹을 줄 알다니, 나 어른같아." 손에 쥔 컵을 다시 내려놓았다. 열세 살 어느 여름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파 한 조각 먹었다고 열세 살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어른의 세계는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처럼 아주 조금씩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 날 이후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언제였을까? 수십 년 동안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한 날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오십을 코 앞에 둔 지금도 사실 내가 진짜 어른인가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도대체 어른이 뭐냔 말인가 싶을 때는 두 세번도 넘을거고. 말나온 김에 어른이란 뭘까?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이어령 선생님 같이 사회가 믿고 따를만한 분만 어른이라고 부르자니 온 세상이 다 아이투성이가 될 거고, 그런다고 법적인 나이로 성인이 되면 다 어른이라고 하자니 욕설을 부르는 모자란 어른들이 또 넘쳐난다.




사실 열세 살에 대파조각을 먹으며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후로 오래도록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력을 가지면 어른이 될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나는 어설프고 서툴렀다. 서른이 되면 도덕적으로도 성숙하고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어른이 될 줄 알았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서른의 나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속은 여전히 아이인 불균형을 극복하는데 힘을 쏟아야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제는 '어른'들 말처럼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며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경험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세상을 넓히는데 집중하느라 나의 성숙과 성장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아둥바둥 버티며 긴 터널을 통과해냈다.


아이가 청소년이 된 지금, 작은 아이도 제법 자라서 내 손을 덜 필요로하는 요즘, 다시 어른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떡볶이 속에 든 파를 먹고, 생양파를 춘장에 찍어 먹고, 풋고추와 마늘을 고추장이나 쌈장에 찍어 먹고, 매운 닭발과 함께 독한 술을 들이켜고, 쓴 약과 커다란 알약을 무심히 먹는데도 아직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세 살 때의 시선으로 생각하면 엽떡과 마라탕을 최고 단계 매운 맛으로 먹어도 눈물 흘리지 않으면 충분히 어른일텐데 말이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낄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지금처럼 고민하는 태도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꼭 필요할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천천히 어른이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다. 속으로 '그러려니...'하고 중얼거리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적당한 어른이 되련다.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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