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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1. 2023

가르마를 바꿨더니

  내 머리카락은 가늘고 힘이 없다.  젊을때는 얇은 머리카락이어도 제법 찰랑여서 괜찮았지만 중년을 넘어서니 힘을 잃고 축 늘어진다. 숱은 풍성한 편이라 그나마 있어보이지 숱도 적으면 두개골 모양을 그대로 드러낼 지도 모른다. 젊어 좋으면 늙어 아쉽고, 젊어 서운하면 늙어 만족하고. 그런것들이 꽤 있는데 머리카락도 이에 속하지 않을까한다.


  이런 모발이라 펌할때 미용사에게 꼭 볼륨을 신경써달라고한다. 그러면 미용사는 뿌리 끝, 두피에 최대한 가깝게 뜨거운 미용도구를 붙여가며 뿌리부분을 부풀린다. 나는 나대로 열기를 견디고 화상의 위험을 감수하며한 시간 넘게 참아야 한다. 그렇게 둘이 호흡을 맞춰 애를 써야 겨우 살짝 머리에 볼륨이 생긴다.


남자들이 탈모에 신경쓰는 것처럼 여자들은 머리카락 볼륨에 신경을 쓴다.괜히 여사님들이 드라이로 머리를 둥글게 말아서 띄우는게 아니다. 납작하게 머리통에 들러붙는 머리카락이라 남편은 예전부터 홈쇼핑 광고로 나오는 부분 가발을 써서 머리를 부풀려보라고 얘기했다. 전화기를 들고 '선물해줄까?'라고 진지하게 묻곤했다. 자기 눈에는 동그랗지 않고 평평한 내 정수리가 웃겨보인다며 진심으로 걱정해줬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세모꼴고 치뜨면서 남편을 째려봤다.


어제 아침,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잘 말린 후 손으로 빗어넘겼다. 뿌리 볼륨을 살리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말린다.  평소 왼쪽으로 가르마를 탔는데 오른 쪽으로 가르마를 타고 넘겨보았다. 두피의 모공에 꽂혀있던 머리카락이 반대쪽으로 넘어가면서 내 피부가 걸그적 대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을 보니 평소보다 더 볼륨있게 머리카락이 풍성히 서있었다. 오, 제법 샵에서 머리손질하고 방금 나온 여사님 같아 보였다. 하루종일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가르마 방향과 볼륨 상태르 확인했다. 항상 눌려있던 방향과 다른 쪽으로 바꿨더니 힘도 있어 보이고 전체적인 모양새도 생기있어 보였다.

단순히 느낌의 차이일 뿐, 겉보기엔 별 차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남들 눈에 똑같다 하더라도, 나만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미묘한 머리카락의 각도가 기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만족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미세하게 조금 더 떠 있는 머리카락만큼 내 마음도 들뜨고 서 있는 뿌리만큼 내 자신감도 서 있고, 풍성해진 느낌만큼 내 기분도 여유롭다.


평소와 다른 선택이 내 하루를 이렇게 들뜨게도 만든다. 늘 내리던 버스정류장 대신 하나 더 지나쳐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날도 그랬다. 시간은 5분 더 걸렸지만,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면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일상의 풍경 대신 다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신선한 자극을 받아 출근할 수 있었다. 늘 먹던 아는 맛의 음식 대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 때도 그렇지 않을까. 실패야, 다신 안 먹어, 라고 후회할 때도 있겠지만, 그 후회 역시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쌓인다. 작고 사소한 변화를 통해 생활에 작은 윤기를 얻거나 이전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증을 얻거나 어느 쪽이건 크게 손해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내일은 안 발라본 색의 립스틱을 골라볼까? 안 입어보던 모양새의 옷을 입어볼까? 화장품이나 옷은 새로 구입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 이런, 이러다 지름신이 내려오겠네. 이거 말고, 돈 안 들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돌려놓기 쉬운 것, 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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