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Jan 16. 2022

글감이 없습니다.

그래도 씁니다.

한동안 아무런 글을 쓰지 못했다. 

라고, 한 줄을 쓰고 나니 좀 쑥스럽다. 브런치가 작가라고 불러준다고 진짜 무슨 내가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 처럼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싶어 겸연쩍고 부끄럽다. 


어쩌다보니 작년 12월 말 쯤 부터 일기도 한 줄 쓰지 못했다. 얄팍한 종잇장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나를 뜨거운 물에 담갔다 꺼내면 바로 월남쌈이라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몸매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배불뚝, 엉덩불뚝, 가슴불뚝 삼불뚝이니 그럴 일은 없, 글감 우물이 바싹 말라 버렸다는 뜻이다. 


안그래도 부족한 시간에 무언가 하고픈 말이라도 있어야 어떡해서든지 글을 써볼텐데, 쓸 이야깃거리도 없고 쓰고자 하는 열정도 모자라니 글이 나올 턱이 있나. 그런 주제에 요 한 달간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인풋도 턱없이 부족하다. 인풋이 없으니 아웃풋도 없다. 이 얘기 찔끔, 저 얘기 찔끔하다가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버려둔 글토막 몇 개가 뒹굴뿐이다. 


글감이 없어도 원체 스토리텔링 실력이 뛰어나거나 찰지고 맛깔나게 얘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는데도 술술 글이 완성되던데(그런 이웃작가님들도 많으시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얘기를 재미나게 진행하지 못한다. 어떡해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평소에 훈련이라도 하는 걸까? 학원이라도 다니는 것은 아닐까, 무슨 특훈을 받으면 좋을까, 누가 MBTI 성향 중 N이 아니랄까봐 혼자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느라 손가락은 또 키보드 위에서 멈춰버린다. 이러니 도대체 언제쯤 말하듯 글을 풀어 놓는 단 말인가. 공기 반, 소리 반의 보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고, 재미 반, 진지 반의 글솜씨 역시 타고나는 것인가보다….라는 생각의 흐름을 끊어내고 무언가 글을 만들어 보기 위해 카페인을 한 모금 들이켠다. 


일요일 아침, 왠일로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입맛 없다며 밥을 안 먹겠단다. 그저 유튜브나 보면서 뒹굴거리고 싶단다. 돌봄노동이 하나 줄어 좋을 줄 알았는데 내 배가 고프니 안 먹겠다는 아들이 원망스럽다. 아무래도  혼자라도 아침을 차려 먹을까, 좀 있음 금방 점심을 먹어야 하니 지나친 배부름을 경계하는 것이 나을까, 그 시간에 글쓰기를 하면 어떨까, 고민만 하다 강제로 간헐적 단식이 되어버렸다.


없던 글감이나 나만의 에피소드가 어디서 갑자기 솟아날이 없고,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깊은 곳에서 꺼내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런 내 마음을 글로 쓰고 발행까지 눌러본다. 아무글대잔치일망정 하나라도 올려두는 것은 그 과정이 나를 채찍질하게 될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빛과 형태가 아름다운 자기를 구워내려면 계속 물레질을 하고 실패작은 가차없이 깨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부족한 글이지만 쓰려는 의지를 발휘할 때 조금이나마 근육이 붙을 것이고,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올리며 용기를 내보는 과정이 한 발이나마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아침, 사적인 글토막이지만 또 하나를 더 꺼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일을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