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설거지하는 저녁

그에게 내 브런치를 바친다

by 피어라

먹고 난 다음 개수대에 가득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면 화려한 빛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 혹은 세상의 감춰진 어둠을 보는 것만 같다. 이리저리 엉킨 그릇들을 헤집으며 물과 세제로 악을 정결케 하고 세상의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이는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다.


나는 용사가 나타나 악을 물리치고 이 세상에 빛을 가져오길 기다리는 나약하고 무력한 일개 백성일 뿐. 식탁 위를 정리하고 어서 빨리 저 타락한 땅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침대 위로 도망칠 생각만 하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 1이다.


그러니 용사여 어서 오라, 칼 대신 고무장갑을, 방패대신 수세미를 쥐고 어서 가서 저 악을 무찔러라!!! 내 기꺼이 그대 발에 무릎 꿇고 경배와 찬양을 바치리니이이이이이!!!!!!



여보 고마워 ^^ 수고했어~~~~~참 그런데 식기세척기라는 강력한 마법사가 있다는데 말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