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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3. 2022

우울하고 이상한 여자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이삼십대 여성의 우울에 관해 탐구한 하미나 작가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과 시인 백은선의 산문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이다.


시인 백은선의 산문은 오래된 집 창문에 끼워둔 불투명 유리창 같다. 까끌까끌한 삼베같다. 날 서있고 불안하며 조각나 있지만 모서리를 갈아내어 빛을 모으려는 유리조각같다. 자신이 경험한 폭력에 대해 외치는 고함과 세상의 시스템을 고민하는 시인의 고요가 글 속에 동시에 담겨있다. 흐린 푸른 색의 표지처럼 우울한 질감이(항상 빨간 옷을 입는 시인이 사주로 보면 푸른색이 좋다기에 시집의 색을 푸른빛으로 정할까 고민했다던 부분이 떠올랐다.) 마음 아리게 하지만 폭력속에서 살아야했던 여성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학생에게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아서 긍정하고 읽어내려갔다. 제목도 얼마나 내 모습 같은지......

[p13]나는 싫은게 너무 많다. 근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너무 좋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 싫다. 세상의 모든 선의를 의심하면서도 선의를 믿는 바보 같은 내가 싫다.


[p80]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매일 '아, 내일 자살해야지'그런 생각을 하고 ㄴ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괜찮아.잘못되면 자살하면 되니까'하고 말했다. 자살은 늘 내가 마지막에 낼 수 있게 예비된 카드이자 보험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난 후에 더이상 그런 생각으로 조차 위안삼을 수 없다는 게 서럽고 슬퍼서 감당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삶에서 단 한 가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마저도 죄가 된다는 거. 그게 견딜 수 없이 슬펐다.  


하미나 작가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우울증으로 내몰린, 그러나 제대로 자신의 증상을 말하지 못했던 젊은 여성들의 고통을 차분히 설명한다. 병리적인 해석이나 제도적 헛점을 짚어내는 르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녀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며 개인의 고통과 사회 시스템을 살피고 있다.


[p34]나는 프로이트를 포함한 남성 치료사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여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과 수치심을 떠올린다. 그것을 기리고 싶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p123]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납득 가능한 설명을 얻기를 원한다. 서울 안에서도 가난한 지역일수록 동네 주변에 점집이 많다.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대신 자꾸만 대안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그 안에서 자꾸만 억울한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


[p265]돌봄은 또한 침범이어서 어렵다. 돌보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에 관여해야만 한다. 선을 넘는 순간이 생긴다. 어디까지가 돌봄이고, 어디서부터는 폭력일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억지로 얼마나 말릴 수 있을까. 당사자가 원망한다면? 그래서 관계가 끊어진다면? 돌봄은 때때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본질적으로 양가적이고, 맥락적이고, 관게적이다. 돌봄은 사랑.양육.친절.다정과 같은 속성과 자주 연결되지만, 현실의 돌봄은 불안.상처.억울함.분노.증오와 같은 속성과도 밀접하다. 완벽한 돌봄을 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왜 어떤 여자들은 스스로를 싫어하고 좋아하며 이상한걸까? 왜 또 어떤 여자들은 미쳐있고 괴상한걸까? 여자들은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여자에게 우울과 자살은 어떤 의미일까?


두 권을 동시에 읽은게 어떤 가르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은 자신의 우울을 고백하고 또 한 권은 여성이 고백하는 우울에 대해 알린다. 한 사람은 자신의 아픔과 함께 하는 삶을 얘기하고 한 사람은 아픈 삶과 함께함을 얘기한다. 차례로 책을 덮으며 내 오랜 고통이 떠올라 많이 아팠다. 언젠가 나도 고백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이 책에 그은 밑줄과 수없이 붙인 택들은 유효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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