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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Mar 26. 2024

스타벅스에 왔습니다.

퇴사일기

'동백 고객님 주문하신 카푸치노 텀블러에 준비되어 불러드립니다.'


23년 3월 1일 나의 상팔자는 시작되었다.

퇴사한 직원의 톡을 제외하고 더 이상 부장이라는 호칭을 듣지 않는다.

지랄도 가지 가지던 10년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대표의 승인은 떨어졌다.

이제 어쩌다 이사의 가래기침을 듣지 않아도 되고 밤낮 화가 나 있는 대표이사의 진상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새벽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지고 재수를 시작한 둘째 녀석과 흰머리 절친의 아침밥을 나름 신나게 챙긴다.

온기가 남아 있는 침구 속으로 다시 들어가 세상 달콤한 늦잠도 잔다.

여유 있는 나의 아침밥도 영국 왕실의 여왕 부럽지 않게 내가 차린다.

화가 날 일도 없고 딱히 조바심도 나지 않는다. 

시기만 다를 뿐 우발적으로 던진 사표가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때마침 제대를 한 큰 아들과 평화로운 평일 제주행도 5일이나 이어졌다.


자다가도 문득문득 뭔가가 훅 치고 올라와 가끔은 잠을 설친다.

내가 짐을 싸던 2월의 마지막날. 뭐가 그리 신이 났을까? 여직원과 깔깔거리고 웃던 그의 웃음은 아직도 용서되지 않는다. 음악을 틀며 콧노래를 부르던 그의 교만함은 반드시 되갚아주고 싶다.

한 5일 동안은 눈만 뜨면 눈물이 흘렀다. 지인들에게 소식도 알려야 하고 나의 바뀐 일상도 적응해야 했는데 그냥 하염없이 억울했다.

버림받은 조강지처 이야기를 아는가!

부부가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살림에 죽어라 아끼고 열심히 일해서 작지만 새집을 마련했더니 기고만장한 남편 놈은 혼자 잘해서 이루었다 기막히게 자만하더니 자기 처를 내보낸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세컨드를 집에 들였다.

주문한 메뉴를 로봇이 가져다주고 어플만 깔아 놓으면 원하는 정보를 수시로 얻을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도 말이다.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적당한 소음과 거슬리지 않는 음악. 그런대로 쾌적한 실내 온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동선. 알록달록한 음료와 유혹스러운 푸드. 바리스타들의 육성. 계절마다의 프리퀀시. 텀블러만 들고 가면 저절로 쌓이는 에코별. 5시간을 앉아 있어도 눈치 주고받지 않는 분위기. 사이렌 오더의 시크릿함까지 모든 게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

도서관 보다 책을 읽는 것도 훨씬 자유롭다. 글을 쓰는 일에 집중도 최고다.

퇴사를 예정했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안식년도 필요했고 작고 귀여운 퇴직금을 아끼면 둘째 녀석 1년 재수를 하는데 크게 부족함은 없어서였다.

다행히 근면 성실한 절친은 80세까지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저 한 마음으로 빨대를 꽂을까 한다.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알뜰하게 모으고 녀석들의 아르바이트도 장려하면 된다.

가족 모두가 원활한 금융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에 힘쓸 생각이다.

그런 나의 놀이터가 되어 줄 스타벅스에는 한 없는 호구가 될 생각이고.





오늘의 불청객이 등장했다.

4인 자리에 혼자 앉더니 입장과 동시에 매장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무엇을 하러 왔는지 손에 든 휴대폰이 전부다.

다 괜찮다. 다만 그녀의 레깅스 복장은 여성으로서 수치스럽다. 

'저기요~ 내 무릎담요라도 좀 두를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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