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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안 사막에 사랑이 흐른다.

빨래하는 멋진 아빠들!

by 천혜경

흙빛 사막의 바람은 뜨겁고, 물은 멀다.


수단 북부 누비안 마을에서는 삶이 흙색 사막처럼 단단하게 말라붙지 않도록, 누비안 공동체의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움직인다.


1960년대 이집트와 수단 정부가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였다.

그 건설 현장에 살았던 누비안 마을 수십 곳이 나일강 범람지에 잠겼다.

그 결과, 수많은 누비안들이 이곳저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옛날부터 살아오던 역사와 문화의 전통적인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런 아픈 역사를 하얀 미소에 담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오래전 쿠시 왕국의 숨결이 여전히 이어진다.




새벽 햇살이 사막 모래 위로 부서질 때,

누비안 마을의 남자들이 빨랫감을 들고 하나둘 공동 수돗가로 모여든다.


물은 귀하고, 사막의 삶은 거칠다.


그러나 사막의 모래에 스며들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비누거품 속엔, 오늘도 버텨낼 이유가 충분히 담겨 있었다.


'수단 북부에 사는 누비안 종족은 남자들이 빨래를 합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가부장적인 문화라 알고 있었던 땅에서, 남자들이 빨랫감을 안고 공동 수돗가로 향하는 모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양철 큰 양동이에 빨랫감을 넣어 부지런히 빨래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알던 ‘남성성’의 고정관념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성의 존재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안타깝게도 아직 할례나 조혼 같은 전통이 남아 있지만, 누비안 여성들은 이를 단지 고통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사, 식사 준비, 자녀 교육을 도맡는 동시에, 공동체의 중심에서 주어진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당당하게 감당하며 살아간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모계 중심의 유산 전승과 여성의 경제적 결정권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누비안 여성들은 강한 정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지니고, 전통 복장과 언어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언제나 인간의 역사를 지탱해 온 강인한 존재임을 다시금 느낀다.



누비안 마을에서 남성이 빨래를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 아니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자,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리듬이다.

공동 수돗가에 둘러앉은 이들은 단지 옷의 때를 지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손길엔 가족을 위한 책임과 마을을 위한 나눔이 담겨 있다.


등 뒤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누군가 끓이는 계피향 커피의 연기, 그리고 먼지 속의 햇살이 흘렀다.
누비안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낯설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품위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피어났다.


빨래는 끝나도, 이들의 역사는 계속된다. 끈질기고도 뜨겁게!


물 부족으로 인해 수단 북부에 사는 누비안 사람들의 삶은 여러모로 어려웠다.

이 지역은 사막 지대에 속해 있어 강수량이 매우 적고,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신생아 사망률이 높은 곳이고, 물을 정수하는 법을 몰라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세탁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조차도 큰 수고를 요구한다.


물이 없는 땅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루 세 번 틀 수 있는 수도꼭지조차 없는 땅!

누비안 사람들은 오늘도 강물처럼 질기고 부드러운 인내심으로 삶을 씻어내고 있다.


그날 나는, 내 손에 들린 생수병 하나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막 한복판에 서서, 물보다 귀한 생명을 흘려보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단단히 메마른 땅 위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웃고, 서로를 돕고, 묵묵히 삶을 견뎌낸다.

그 고된 일상 속에, 인내의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예고 없이 동방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전해준 작은 물줄기 같은 나눔이 스며든다.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땅에,

문득 나타난 한국 젊은이들의 펄펄 뛰는 에너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흙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지루하고 단단한 일상 속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다’
라는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묻는다.


“어떻게 왔느냐?”
“뭘 타고 왔느냐?”
“왜 왔느냐?”


나는 그저 땀에 젖은 허그와 환한 미소로 대답한다.



희망조차 말라버린 광야 같은 이 땅에,



하나님의 생수는
멀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담대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조용히, 사막에 결코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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