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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피아스타의 환영!

현지인 작은 돈, 이방인에겐 큰 마음!

by 천혜경

카이로의 대중교통은 늘 혼잡하다.

정확한 노선표도 정해진 정류장도 없다.

어쩌면 있긴 한데, 외국인인 내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아무 불평 없이 자신의 자리를 알고 기다리다가, 차가 오면 손을 흔들어 세우고는 자연스럽게 타고 내린다.

누군가 운전사에게 외치면, 그는 말없이 차를 멈춘다.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나에겐 여전히 작은 모험이다.


나는 종종 작은 봉고차를 개조한 ‘마이크로버스’를 타곤 한다.

차를 세우기 위해 손을 흔들고, 행선지를 소리쳐 말해야 한다.

발음이 어색하거나 목소리가 작기라도 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 미니버스는 늘 만원이다.

사람들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앉고, 좁은 공간엔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겨울에도 창문은 반쯤 열려 있고, 그 사이로 모래 먼지가 날아든다.




그날도 어김없이 약간의 긴장을 안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노선, 생소한 사람들, 낯선 언어.

나는 여전히 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내가 앉은자리는 운전기사 바로 뒤였다.

이 자리는 승객들이 건넨 요금을 모아 기사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조수 역할이 있다.

앉자마자 내 뒤에 앉은 신사 한 분이 어깨를 톡톡 치며 요금을 건넸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 알아차렸다.


얼떨결에 돈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내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까지도 내게 요금을 건넸다.

나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 자연스럽게 조수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돈을 잘 걷네요. 당신 차비는 내가 낼게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정말 괜찮습니다”라고 했지만, 그는 내 손을 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한국에서 오셨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했다.


“환영합니다. 이집트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맨 뒤 자리의 젊은 남성이 큰소리로 물었다.


“한국 드라마 재미있어요! 나도 봤어요. ‘대장금’, 그거 정말 재미있었어요!”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었다.


“한국 여자들도 히잡 쓰죠? 드라마에 전통 의상 입고 머리에 뭐 쓰던데요.”


아마 '대장금' 사극 드라마 속에서 한국 여성들이 한복 위에 장옷을 걸치고 외출하던 모습을 보고, 이 분들은 우리 문화가 자기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차 안은 어느새 조용한 공감과 웃음으로 물들었고, 나도 긴장을 내려놓은 채 그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당신도 삼성에서 일해요?”

“내 친구도 한국에 있어요.”

“한국 길거리는 정말 깨끗하던데, 누가 청소해요?”


이야기꽃은 여기저기서 피어났고, 그렇게 나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낡은 미니 버스 안에서 모르는 누군가가 대신 내 준 버스비 25 피아스타는 작음 빵하나 살 수 있는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향한 아주 큰 환대였고, 내가 이 도시 속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하나의 증명이기도 했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이방인인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환대를 할 수 있을까?”


이집트에서의 삶은 피곤하고 녹록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따뜻한 환대를 온몸으로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깊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돌덩이를,
노신사의 25 피아스타로 조용히 녹여주셨다.


가장 작고 조용한 사람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날의 봉고차 안은 붉게 물든 창밖 풍경보다 더 따뜻했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 ‘이집트에 온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당신의 방식으로 내게 건네주셨다.


그날 나는 이집트에 잘 왔다는 확신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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