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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기차가 멈추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날!

by 천혜경

이집트 최남단 국경을 넘어서면 수단 북부의 사막이 펼쳐진다.

그 광활한 모래벌판 한가운데, 단 하나의 기찻길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3일에 한 번, 그 기찻길을 따라 수도 카르툼까지 가는 기차가 달린다.


이집트와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대한민국 대학생들이 대거 모였다.


약 50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우리는 수단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표를 맞추고, 날짜와 시간을 맞춰 탑승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하루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좌석에는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표를 보여주자 그들은 히죽 웃으며 엉덩이만 살짝 비켜주었다.

아이를 안은 여인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을 밀어내고 “내 자리다!” 하며 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양심이 있다면, 그리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학생들이라면 더욱 그럴 수 없었다.

결국 한 좌석에 두세 명이 겨우 걸터앉고, 몇몇은 통로에 앉은 채 서로 몸을 기댄 채 기차는 출발했다.
창밖으로는 황홀한 사막 풍경이 펼쳐졌고, 우리는 감격에 잠겼다.


그러던 중,

기차가 ‘쿨렁’ 거리며 갑자기 멈춰 섰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작열했고, 까맣게 달아오른 기차 안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는 왜 멈췄는지도 모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몇 시간을 견뎠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통로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기차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기차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물이 부족해지자 우리는 각자가 가져온 물을 조금씩 나눠 마셨고, 배가 고파지자 가진 음식도 함께 나눴다.
하지만 우리만 따로 챙겨 먹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현지인들이 조심스럽게 천으로 된 보따리를 풀었다. 안에는 굳은 빵이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조금씩 나눠 우리에게 건넸다.
시큼하고 오래된 냄새가 밴 그 빵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며 웃으며 받아 들고, 그 앞에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먹었다.


곧이어 그들이 회색빛 플라스틱 통을 들어 보이며 마실 거냐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저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면 그 물과 빵이 얼마나 그리울지 그땐 미처 몰랐다.


밤이 되었다.


드넓은 사막 위에 나가 눕고 싶었지만, 혹시 기차가 갑자기 출발할까 봐 모두 기차 안에 머물러야 했다.
기차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반쯤 감긴 눈으로, 그렇게 낯선 밤을 보냈다.


새벽이 오자, 사막은 하루 중 가장 맑고 시원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참다못한 우리는 하나둘 기차 밖으로 나와 모래 위에 드러누웠고, 웃으며 모래샤워를 즐겼다.

그리고 그룹별로 둘러앉아, 남은 음식들을 조금씩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 위의 커다란 물탱크를 발견했다.



우리는 플라스틱 병에 물을 받아 검은 봉지 위에 올려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로 소독했고,
그 물을 조금씩 나눠 마셨다.


놀라운 건, 현지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어디선가 또 먹을 무언가를 꺼내곤 했다.
시큼한 빵이라도 더 주면 감사히 먹었을 것이고, 그 회색빛 물통의 물도 지금이라면 주저 없이 마셨을 것이다.


모든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셋째 날 아침,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렸다.
고장 난 우리 기차를 끌어갈 구원열차가 같은 선로를 따라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기차 안에 있던 모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기차는 그렇게 다른 기차에 연결되어 한나절을 달려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 여정은 어느 누구도 계획할 수 없었고, 감히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사막의 또 견뎌야 하는 점점 추워지고 깜깜한 밤이 오면 마음깊이 후회하고 이일을 무리하게 계획한 것이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아 두렵고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잠 못 자고 우리 모두 를 살려달라고 몰래 모래 위에 뒹굴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나 사막에서 맞닥뜨린 황당한 상황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얼굴빛도, 언어도, 국적도 달랐던 사람들과 뜨겁게 가족이 되어 서로 나눠 먹으며 이겨낸 것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길고도 더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만나기 쉽지 않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날


모습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가장 가깝고 뜨겁게 만났고, 함께 인내를 배웠다.

그리고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 시간은 불평 없이, 찬양하며 기도했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삶의 깊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을 꽉 붙잡고 멋지게 웃으며 가장 어두웠던 날을 살아낸 기적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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