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날에 만난 달

달! 그대는 내 삶의 표지판!

by 천혜경

난히 어두운 밤이면 먼 하늘 달빛은 더 밝게 빛을 내는 것 같다. 달이 없는 밤은 방향도 볼 수도 없고 침묵 속에 걷고 있는 내 발소리는 더 크게 나의 깊은 두려움에 울려 퍼진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달의 은빛이 나를 비춰 주는 것을 느낀다.

달은 내가 가는 곳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가 살았던 이집트 사막의 밤은 불 빛 하나 없지만 사막의 지평선이 보일 만큼 환하게 비치는 큰 달의 존재는 웅장하고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어느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어두운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 삶에도 어두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가난까지 들어붙어 떠나지 않았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어린 나는 친척집과 고아원에 맡겨졌다.
어머니의 병과 재정적인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하시던 아버님의 두 번의 자살시도가 7살의 나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고, 그렇게 시작된 삶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추억들을 남겼다.

이렇게 나는 애늙은이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픈 엄마와 방황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야 할지를 배워야 했다.

그 어두운 밤에 가난이라는 아이까지 내 등에 붙어 같이 살자고 매달리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 아이는 붙어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은 내 귀에 속삭인다.


'너에게는 미래가 없단 다… 넌 평생 이렇게 살 거야… 항상 네 곁에 있는 걸 알 거야 왜냐하면 네 부모님의 삶에 항상 있었던 것을 보았잖아, 그렇게 쉽게 너에게서 떠나지 않아!'


그 가난이라는 아이는 얼마나 무거운지, 점점 살찌고 단단하게 나를 잡아먹을 만큼 자라났고, 밤새 하얀 길에서 가난이라는 그 아이에게 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게 그것을 처리할 능력은 없었다.

어느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아이가 되어 갔다.

가난한 집 딸, 키도 유난히 작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내가 누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두운 시간들이 20대를 덮어버렸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친구가 참여하는 영어캠프에 가려고 상경을 하였는데, 내 뒤에 서서 등록을 하던 분과 서로 인사를 하다가 놀라운 제안을 하신다. 의료 선교사로 함께 가자고!!

처음으로 느끼는 환영의 손길에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달이 환하게 빛을 비추는 것 같았다.

가장 어두운 날에 만난 달은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통해 말을 건넸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먼 은하수 별들의 이야기와 미래의 비밀들을 알려 주었고, 내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가난이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못할 것을 믿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나의 숙명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에는 옆 나라 수단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 피난을 온 많은 난민들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수단난민 학교를 돕고 있었는데, 그분들의 삶은 너무 열악했다.

피난을 오면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 누군가의 손에 팔려 가는 아이들이 있는지 아이들의 주위를 살펴보며 돌봐야 하는 일이었다.

판자로 만든 작은 학교에 빼곡히 앉아 공부하는 교실마다 자욱한 먼지는 목이 메고 숨을 쉬기 어렵게 하였지만 모두는 배우는 기쁨과 맛난 빵과 우유를 먹는 행복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점심을 준비하고 공책을 사주고 교실을 깨끗하고 좋은 환경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 않았다. 옷들이 없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옷도 준비하고 선생님들이 충분하지 않아 동분 서주 하였다.

미술 선생님(13살)과 난민학교 학생들


어느 날 같이 영어 선생님으로 같이 일하는 딸과 미술선생님으로 일하는 아들이 긴 시간 모아둔 저금통을 다 털어 공책이 없는 모든 학생들에게 얇은 공책을 사서 선물로 나눠주었는데, 그다음 날 여러 명의 학생들이 공책을 다 한 장씩 찢어서 가지고 왔다. 나는 마음이 언짢아서 왜 공책을 찢었는지 약간 목소리를 높여서 물어봤다. 나의 상기된 목소리에 학생들은 놀라서 우물쭈물 말을 못 하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언니와 오빠에게 나눠 주었어요” 라 고 말했다.

영어선생님( 14살)과 난민학교 학생들

나라를 떠나고 가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두운 시간에 선물로 받은 작은 공책을 형제끼리 한 장씩 찢어 나눠 주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때때로 한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철수하고 들어가면서 난민 학교로 남은 자재들을 보내주어서 기적은 우리를 아주 부유하게 하였다. 작은 손길들이 가난이라는 어두움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시간에 멀리서 비춰주는 달빛은 고마운 존재이다.

난민으로 가장 어렵고 불안한 시간, 스스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환경이 그들을 누르지 않도록 아니 눌러도 눌리지 않도록 그들을 세워주어야 하는 작은 달빛은 참 중요한 존재이다.

또 하나의 달빛으로서 다른 어둠 속에 비춰주어야 하는 일을 감당할 사람들은 한 번쯤은 그 달빛을 만나서 일어나 본 사람일 것이다.

그 달빛을 통해 다시 걸어야 할 숙명의 길을 인도받았었기 때문에 또다시 어두운 날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마치 폭풍우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환하게 지표를 알게 해주는 등대처럼 말이다.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 어디선가 그 달빛이 나에게 반사되었고 그런 나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빛이 반사된다면 지구 끝에서도 누군가 자신에게 비친 달빛을 도미노처럼 반사하게 된다면 점점 어두움은 빛에 밀려나게 될 것이다.


새벽이 되면서 달빛은 태양 안으로 사라지지만 밤새 내 가슴에 남겨진 빛의 자국은 어디에 서든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힘과 폭풍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믿음과 희망으로 평생 가난과 손을 잡고 내일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주었다.

눈부신 아침이 찾아왔을 때에도 잊지 못하는 어두웠던 삶의 유산들은 내게 봐야 할 것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래서 함께 했던 달빛의 안내로 30여 년 동안 어두움을 따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어두운 시간에 만난 달은 평생 내 삶의 표지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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