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나는 다채로운 나의 이야기는 만남과 헤어짐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다.
환하게 피어난 벚꽃을 뿔뿔이 흩어져 보내야 하는 잔인했던 봄날, 너나 나나 광합성의 통제 아래 깊어진 초록의 계절과 이별하고 온갖 아름다운 자신의 원색을 드러내는 가을날! 미처 다 느껴 보지도 못하고 날려 보내야 하는 낙엽들의 화려한 침묵들은 나의 모든 감성을 살아나게 한다. 차가운 추위에도 살아낸 하얀 나목의 인내로 겨울은 다시 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초여름날 가장 멋진 양복을 입은 아들과 한국의 품위 있는 한복을 입은 엄마가 감미로운 멜로디에 맞춰서 춤을 춘다.
아들과 춤을...
아들은 결혼식 피로연에 엄마와 춤을 추는 음악으로 Jason Mraz이 부르는 93 Million miles를 선택했다. 이 노래의 제목인 9천3백만 마일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가리킨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아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항상 아들과 함께할 것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내어 넉넉히 세상을 이겨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살다가 만나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며 항상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빠가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노래이다.
내 인생에 딱 한 번 주어진 귀한 이 순간에 아들과 함께 이 멋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들이“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이렇게 길러 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막아 두었던 댐이 터지는 것같이 뜨거운 눈물이 주책스럽게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아들아 너는 엄마의 삶에 기적으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이야! 그리고 엄마에게는 큰 기쁨이고, 행복이야! 이제는 엄마가 너를 멀리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구나. 엄마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네!”
문화와 언어가 생소한 나라, 파키스탄에서 내 몸에 남아있던 결핵균과 싸우기 위해 매일 한 움큼의 약을 먹으며 뱃속의 아들을 길렀다. 입덧이 시작되었을 때는 나는 그들의 주 양식인 밀가루를 빚어 만든 작은 빵 같은 짜빠띠를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고 구토를 멈춰야 했다. 임신 중독증까지 있었기에 더욱 조심하면서 견디다가 겨우 수술을 하고 무사히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태어나고 3달쯤 되었을 때 재정이 너무 어려웠다. 33년 전의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 해외로 송금을 하면 한 달 이상이 걸리던 시절이었 다. 특히 파키스탄은 송금 받는 것 조차 늘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더욱 힘든 것은 매달 입금되는 재정으로 우리가 외국인이었기에 더 많이 내야 하는 비싼 집세와 그 나라의 수입 제품이었던 비싼 분유를 살 수 있는 재정은 항상 부족했다.
어느 날 분유가 얼마 남지 않아 아껴서 먹이고,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은행에 가서 입금을 확인하였지만 계속 재정이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우유를 먹이고 비어버린 분유 통을 붙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는 갑자기 파키스탄 사람들이 양이나 염소 뼈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냥 버리는 것이 생각났다.
그동안 얼굴을 익혀 둔 정육점에 가서 버리는 소 뼈를 받아서 푹 고았다. 하얗게 고인 그 국물에 밥을 넣어 다시 끓인 후 채에 걸러 맑은 우유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3개월 된 아들은 엄마가 만들어 준 그 뼈 우유를 너무 잘 먹었다. 아마도 매일 먹었던 분유보다 더 고소하고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서 아들이 너무 어리고 소 뼈우유에 기름이 있어서 그런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간 뼈 우유와 설사와 공존하며 그 어려운 시간을 통과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안에서 아들의 키가 유난히 큰 것은 바로 이 소 뼈 우유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계절마다 내 가슴에 찍힌 아들과의 이야기들은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달려와 내 앞에 서 있다. 아들과 함께 한 모든 사진 한 장 한 장을 둘러보면서 나는 이제 엄마 품을 떠나는 아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아들아! 너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순간은 정말 아름다웠고 너무 행복하였단다. 이제 지금부터 시작되는 한 가정의 리더 로서의 도전의 시간은 더욱더 신나고 멋질 거야! 그동안 부족한 아빠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힘들었던 시간도 잘 이겨냈고, 수많은 경험을 한 너는 반드시 멋진 남편이 될 거야 그리고 멋진 아빠가 될 거야!
아들아 네 삶에 힘들거나 어두운 시간이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절대 네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빠와 엄마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 있었고,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아니 천국에 가서라도 너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꼭 기억해라! 언제든지 돌아와 안길 아빠와 엄마 품이 있다는 것을! 아들아 넌 결코 혼자가 아니야!”
아들이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멋진 날! 손뼉을 치며 기뻐해야 하는데…. 나는 아들과 춤을 추려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한복을 감격의 눈물로 흥건히 적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