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새벽에 길을 걷다가 발 앞에 있던 작은 홀을 보지 못하고 넘어졌다. 나는 아픈 발을 질질 끌고 집에 와서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파스를 붙였지만 이틀 동안 안티푸라민 냄새만 온 집안을 진동하고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삼일 째 되는 날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결국 발등의 골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응급으로 작은 나사를 뼈에 심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10인실에 배정되어 나는 고통과 씨름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다른 환자분들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웃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소곤대기도 하셨다.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기에 속으로 짜증이 많이 났고, 아픈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병실 분위기가 너무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배당된 식사를 한 분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갖다 주시기도 하고 어디가 왜 다쳤는지, 어디 사는 사람인지, 아직도 고통스러워 아픔을 참고 있는데 계속 말을 건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겨우 한 다리를 하늘로 뻗고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익숙해진 시끄러운 대화들 사이로 슬그머니 끼어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커튼도 없는 10개의 병상에는 많은 사연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아픈 우리들은 치료를 받는 동안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공동체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모두 스스럼없이 나누셨다. 다리 저는 월남 참전 용사 아저씨와 결혼하신 중국 동포 아주머니, 버스에서 내리다가 골절되어 팔 깁스 한 이혼하신 아주머니, 늘 며느님들과 긴장하며 산다는 다리 깁스 하신 할머니, 두 아드님과 자꾸 다투신다는 골반 뼈 수술하신 할머니, 교통사고로 들어온 두 아가씨 들, 유난히 소리가 크고 우리 병실의 TV 리모컨을 갖고 계신 아주머니, 슈퍼에서 일하시다가 허리가 다치신 아주머니, 우리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10명의 삶을 다 공유한 한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우리 병실에는 가장 나이가 많으신 할머님이 계신데, 그 할머니는 식사를 하시다 가도 잠이 오면 식판을 살짝 밀고 그 옆에 머리를 숙여 주무셨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 서로 할머니를 깨우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가서 흔들기도 하였지만 할머니의 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러 느냐는 듯이 다시 똘 똘 해지시고 맛있게 식사를 하시곤 하신다. 가끔 들리는 가족들이 잠깐 있다가 가고 나면 할머니의 잠은 더 깊어지시는 것 같았다. 특히 그 할머님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운동하신다며 좁은 병실 안을 밤새 폴 대를 돌돌 끌면서 돌아다니셨기에 그 밤에는 우리도 일어나 할머니와 같이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어느 날 그 할머님이 어디를 가셨는지 밤 10시가 지나도 병실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다가 불안해서 간호사 실에 연락을 하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깜깜한 병원 구석구석을 조용히 할머니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한 분이 목욕탕을 다시 들어가 보고는 놀라서 조용한 소리로 말하며 손짓을 했다.
“할머니 목욕탕에 쓰러져 계세요”
어두운 복도에서 목발로 걸어야 하는 아주머니,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 각양의 모양으로 우리는 최대한 소리를 줄이고 각자의 최대한의 스피드로 달려가 보니 할머님이 혼자 어두운 작은 유리로 된 문에 기대어 힘없이 앉아 계셨다. 우리는 간호사님과 같이 부축을 하고 휠체어에 앉히고 병실로 모시고 와 침대에 눕혔다. 할머니를 위해 열과 혈압을 검사하고 입다 만 젖은 옷을 다 벗기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누군가가 따뜻한 작은 전기담요를 켜 드리며 온몸을 담요로 감싸드렸다. 한참 지나 할머님은 잠시 눈을 뜨시더니 겨우 입을 열어 말을 하셨다.
“고맙 데이, 내가 목욕을 하다가 샤워기를 놓쳤 는 기라, 그래가 옷이 다 젖었는 기라, 내가 정신이 없어 우째 하지도 못하고 이래 또 쓰러져 잠을 잤는 갑다 아 고 고맙 데이!”
우리 모두는 마음이 아파서 서로 막 할머니를 혼냈다.
“할매 막 고함치지요”
“할머니… 아 고! 할머니 이제 목욕 가실 때 꼭 말하세요 네? 할머니!”
우리는 눈물을 훔치며 어두운 불빛 아래 절룩거리며 각자의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우리의 노년의 삶을 보는 것 같아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 아침마다 아프지 않고 눈을 뜬 사실이 너무 감사해 인사를 하며 서로 보살펴야 하는 동병상련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어느새 우리는 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커튼이 없는 병실의 특별한 시계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하시면서 내 옆 침대 할머님에게 오늘 퇴원을 하라고 말하는데 그 할머님이 갑자기
“선상님요! 내는 하루 더 있으면 안 되는 교? 내도 이 아주머니 하고 같이 나갈 랍니더. 집에 가면 뭐 늘 나 혼자인기라 일찍 가문 뭐 하노!” 라 고 하시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시며,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 아주머니와 같이 내일 오후에 퇴원하세요. 내 평생 이런 환자분들 처음 보네요. 환자분들이 퇴원을 같이 하겠다고 날짜를 늦춰 달라고 하시니 신기하네요. 이 병실이 유난히 시끄럽다고 소문났던데 특별한 병실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어쩌면 추운 날 병실에 홀로 누워 병과 싸우며 외로웠을 그 시간에, 오히려 활짝 열린 병실에서 우리는 세대와 민족을 초월한 한 가족 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따뜻함으로 마음의 외로움과 육체의 질병을 거뜬히 이겨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커튼 없는 병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마음에 안고 남아 계신 분들과 아쉽게 이별을 하고 나와 할머니는 같이 퇴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