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지 부라노 섬으로 고고~~
아침으로 누룽지를 간단히 먹고 설거지를 추에게 맡긴 채 심과 길을 나선다. 바포레토 1일 승차권을 30일 전에 베네치아 유니카 홈페이지에서 구매하면 1인당 4유로를 절약할 수 있다는 소리에 ‘4유로면 젤라토를 한 번 먹을 수 있는 돈이잖아.’ 하며 알뜰하게 예매까지 해둔 상태다. 하지만 바로 사용은 불가. ACTV라는 노란 기계를 찾아 실물 티켓으로 발권해야 한다. 다행히 숙소가 산타루치아역 근처라 심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가볍게 걸어가서 티켓 발권을 완료한다.
숙소 바로 앞이 바포레토(수상버스) 장류장이라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4.2 버스를 타고 무라노섬까지 가서 환승해 부라노섬으로 가는 12번 버스로 갈아타면 되는데, 4.2 수상버스가 우리집 앞 정류장에 서는 것이다.
수상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배들을 바라보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오늘 내가 만날 베네치아와 부라노 섬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도착한다. 자동차가 없는 도시 베네치아, 이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배다. 운하 양쪽으로 빼곡히 늘어선 집들 사이 사이를 구불구불 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베네치아의 매력에 빠져들기 충분하다.
산타 루치아 역을 벗어나자 넓은 바닷길이 열린다. 25년 전 처음 베네치아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가다 만난 물 위에 세워진 가로등과 속도를 제한하는 등의 표지판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여전히 수상에 설치된 가로등이 내 눈엔 신기하기만 하다.
아직 무라노 섬까지는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모두들 배에서 내린다.
“알라, 다 내리는데?”
“왜지? 4.2 버스는 무라노섬까지 가는 걸로 아는데...”
수상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넋을 놓고 있었던 우리도 대세에 이끌려 얼떨결에 따라 내린다. 우리가 내린 곳은 ‘폰다 멘테 노베 B(F. te Nove B)’ 정류장.
직원에게 “부라노 섬에 가려면 어디에서 배를 다시 타야 하나요?”를 묻자 아무 말없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에는 우리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다. 손가락 방향 끝이 가리킨 곳은 ‘폰다 멘테 노베 A(F. te Nove A)’ 정류장.
“카푸치노 한 잔 하고 갈까?”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들의 레이더망 안에 들어온 카페를 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내뱉은 말이다. 요즘 우리들은 이탈리아의 카푸치노와 사랑에 빠져 있다.
우리는 부라노 섬에 가는 배 시간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카푸치노와 피스타치오 크로와상을 주문한다. 그것도 자리에 앉아서 먹기 위해 자릿세까지 내고...
“이 집 카푸치노도 정말 부드러운데...”
“이 집 크로와상도 정말 바삭하고 맛있다.”
그렇게 품평회를 곁들이며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을 해치운 시간은 불과 10분. 계산을 요청 하자 종업원이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이렇게 짧게 앉아 있을 걸 왜 자릿세를 냈니?’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게~~ㅠㅠ
버스 정류장에 가니 부라노 섬으로 가는 배가 40분 후에나 출발한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라노 섬 가는 수상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커피를 마시는 건데... 어쩌지?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나는 얼굴에 철면피를 깔기로 한다. “심~~ 우리 다시 아까 간 카페에 가서 말하고 좀 더 앉아 있다가 오자.”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불안한 마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희들 기억하시죠?’ 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전에 여기서 카푸치노를 마셨는데, 좀 더 앉아 있다가 가도 될까요?” 겉으로는 당당한 채, 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쫄아서... 그런데 종업원의 답변이 너무 쿨하다. “물론이지...” 쫄은 마음이 무색하다. ㅋㅋ
이날 50대 아줌마의 당당 뻔뻔함으로 자릿세 값은 절대 아깝지 않았다.
카메라만 갖다대면 화보가 되는 신비한 곳, 부라노 섬
“추에게 고맙다고 전화해야겠어. 나 진짜 여기 안 오려고 했다니까. 안 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잖아. 딱 내 스타일이야.”
부라노 섬에 도착 후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흥분한 내 말에 심이 한 마디 한다.
“물론 안 왔으면 후회는 몰랐겠지만...ㅋㅋ”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부라노 섬. 또한 부산에는 이 부라노섬을 흉내낸 ‘부네치아’가 있을 정도로 부라노 섬은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베네치아에서 하루만 시간이 있다면 당연히 부라노 섬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건만 추의 강력한 추천으로 오게 된 부라노 섬이다. 그냥 예쁘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마을로 들어서자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 알록달록한 집들이 예뻐도 너무 예쁘잖아. 국화보다 소국을 더 좋아하고, 큰 목련보다 작은 개나리꽃을 더 좋아하는 나다. 스케일이 큰 미국보다 아기자기한 유럽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부라노 섬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마을이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치 내가 유화 그림 속 한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다. “여기서 한 장 찍어줘.” 몇 걸음 채 걷지도 않았는데 “여기서도 한 장 찍어줘.” 졸지에 심을 전속 요리사에서 전속 사진사로 직업을 바꿔 버린다.
“알라, 혼자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사진도 못 찍고... 이렇게 전속 사진사도 있고 나랑 함께 와서 좋지?”
맞다. 이곳 부라노 섬은 무조건 ‘같이’ 와야 한다.
이곳은 카메라만 갖다대면 무조건 화보가 되는 신비한 곳이다.
수상 구유 보신 적 있나요?
“저게 뭐지? 바다 위에 뭐가 있는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 앞에서 순간 숨멎...
“헐~~ 구유잖아.”
“어떻게 바다 위에 구유를 설치할 생각을 한 거지? 나 저런 구유 처음 봐... 세상에...”
연신 내 입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온다. 주로 겨울에 유럽여행을 많이 왔으며, 성탄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겨울방학만 하면 바로 다음날 여행길에 나섰던 나다. 그래서 많은 도시의 크리스마스마켓과 각 도시의 특색이 잘 드러난 구유 장식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그런데 이곳 베네치아, 부라노 섬에서 수상 구유를 볼 줄이야...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이 보인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가는 동방박사들과 목동들의 모습도 보인다.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바다 위에 구유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과연 개펄 위에 인공섬을 만들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만든 선조들의 후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이 본 구유 중에서 당연 톱(Top)이다.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수상 구유를 본 것만으로도 부라노 섬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유화 그림 속 한 장면 안에 머물다
장소보다 색감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부라노 섬.’ 마치 내가 유화 그림 속 한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강렬한 빨강과 파랑이 대조를 이루며 서 있는 집.
노란색 벽이 유달리 내 마음을 사로 잡아 한 컷 찍었는데 그게 나의 인생샷이 된다.
운하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자 또 다른 그림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창가를 장식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우아한 레이스 커튼.
집 앞에 장식해둔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분들.
골목길 하나 하나가 예쁜 그림책 한 페이지 같다.
푸른 잔디 위에 빨간 벤치가 내 눈에 들어온다.
“어, 저거는?”
빨간 벤치는 25년 전 리도 섬을 방문한 기억을 소환한다. 비가 한참을 온 뒤 먹구름 사이로 쨍~ 하고 해가 얼굴을 내밀자 풀과 바다가 반짝 반짝... 그때 빨간 벤치를 만나 한참을 그곳에 앉아 비온 뒤의 햇살이 비치는 베네치아의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아름다움에 도취한 내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떨어졌던 기억...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빨간 벤치가 이곳 부라노 섬에도 있네... 몇 십년 전에 만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부라노 섬 입구에 ‘부라노 섬’을 소재로 유화를 그리는 화가가 운영하는 상점이 있다. 들어갈 때는 그저 '색감 좋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스쳐지나갔는데, 부라노 섬을 다 보고 난 뒤 다시 보니 그 그림들이 달리 보인다. 내가 유화 그림 속 안에 머물렀던 것이 실감이 난다.
액자 2호의 작은 그림을 한 점 사, 주방 위 하얀 벽 위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마치 아직도 부라노 섬에 있는 듯하다. 그렇다. 이 그림은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다. 이 그림 안에는 부라노 섬에 얽힌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6월 말까지 연재를 잠시 중단하려 합니다.
이곳에 연재를 시작하며 아직도 글을 쓰는 작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동지가 생겼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일 주일에 두, 세 편을 쓰는 작가님도 있고, 매일 글을 올리는 작가님도 있기에, 그렇다면 나는 '일 주일에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겠지~~' 하고 시작한 연재인데, 직장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직장에 일이 많을 경우에는 일 주일에 한 편 쓰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저의 경우는 한 편을 쓰는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ㅠㅠ (저의 이런 경험을 통해 브런치를 통해 글을 꾸준히 올리시는 작가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그분들이 올리시는 글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6월 들어 직장에 일이 많아지며 연재에 대한 부담이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제가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연재인데,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로 저에게 돌아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재 중단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6월까지 최선을 다해 제가 직장에서 해내야 할 일을 깔끔하게 해내고, 7월에 가뿐한 마음, 보다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조안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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