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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Jul 07. 2024

13 이탈리아남자는 친절남과 바람둥이 중 어느 쪽일까?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2등신 굴욕 사진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자 추로부터 카톡이 온다. 

“외국인이 나 도라에몽처럼 찍어줬어요.”

“뭐? 도라에몽처럼 찍었다고??”



이어서 톡으로 보내온 리알토 다리를 배경으로 찍은 추의 사진. 그 사진을 보자 도라에몽처럼 찍었다는 말의 의미를 알겠다. 나와 심은 동시에 박장대소한다. 

“맞네. 완전히 2등신으로 찍혔네. ㅋㅋㅋ”

“역시 사진은 무조건 한국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니까.” 


여행을 하다보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요청하는 경우가 간간이 생긴다. 그럴 때 외국인과 한국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대충 2~3컷을 찍어준다. 그것도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게 찰칵 찰칵... 그에 반해 한국인들에게 부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치 사진작가인 양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힘든 찍는 각도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찍은 사진을 컨펌(?) 받는 한국인도 있다. “이렇게 찍으면 될까요?” 

그러니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고 싶다면 무조건 한국인을 찾아라. 단언컨대 한국인의 휴대폰 촬영 기술은 웬만한 사진작가 뺨친다.



베네치아의 최고 일몰 명소는 어딜까? 


“지금 어디예요? 나 지금 산마르코 광장에 앉아서 사람 구경하고 있어요.”

친절하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 알려주는 추. 



“우리도 지금 배 타고 가고 있는 중이야.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바닷길에서 만난 태양은 벌써 붉게 노을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원래 일정은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계획이건만, 예상보다 더 오래 부라노 섬에 머무르는 바람에 이러다간 종탑은 고사하고 산 마르코 광장에서조차 일몰을 놓치는 것이 아닌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부라노섬에서 산마르코 광장 가는 바포레토에서 바라본 일몰 전 장면


산마르코 광장 한 켠에 양반 다리를 하고 그 누구보다 더 편하게 앉아 있는 추를 발견한다. 추 역시 멀리서 우리를 보자 반갑게 양 손을 흔든다. 7시간 만에 재회한 우리들... 겨우 7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얼마나 반갑던지... 


나의 사전 조사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일몰 명소로 유명한 곳은 네 곳. 첫 번째로 리알토 다리 위, 두 번째로 리알토 다리 근처 DFS 백화점 루프탑 테라스, 세 번째로 산 조르조 마조레 대성당 종탑,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 마르코 광장 끝 곤돌라 정박지이다. 

이 네 곳 중 이번 여행에서 일몰 명소로 계획한 곳은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종탑이었다. 다른 곳도 물론 멋지겠지만 이곳 종탑에서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베네치아 전경을 꼭 조망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부라노 섬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한 것이다. 4시 조금 넘어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한 우리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 바로 산 마르코 광장 끝 곤돌라 정박지에서의 일몰 감상 뿐이었다. ‘시간 계산을 좀 잘 하고 움직일 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어쩌랴?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전경


일몰을 기다리며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산마르코 광장은 관광명소답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25년 전의 산마르코 광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은 당시 산마르코 대성당이 보수 공사중이었는데 공사 부위를 실물 사진을 찍어 가려놓은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실물 사진을 찍어 공사 부위를 가려놓는 현장을 보는 것이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지만, 25년 전에는 무척 생소하면서도 ‘어떻게 저런 것까지 신경을 쓰지?’라며 미관에 신경을 쓰는 베네치아인들의 예술적 감각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날씨가 흐려 일몰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검은 먹구름과 흐릿한 하늘 사이로 붉은 빛이 퍼지기 시작한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곤돌라를 배경으로 저 멀리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인다. 지는 해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둥근 돔 뒤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먹구름 사이에 숨었다, 모습을 드러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우아한 돔 너머로 붉은 기운이 퍼져 있다. 비록 구름에 가려 완전한 일몰을 감상하지는 못 했으나 내가 본 이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 또한 한 프레임 안에 잡힌 출렁이는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곤돌라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의 모습은 왜 이곳이 촬영 명소인지 답이 되어 주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곤돌라 선착장에서 바라본 일몰 장면 (정면에 보이는 성당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다른 세 곳에서의 일몰 장면도 궁금해진다. 베네치아에서의 2박 3일, 하지만 실제 머무른 시간은 온전한 하루라는 시간 안에 베네치아를 보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지 깨닫는다. 나의 베네치아 여행 계획은 완전 실패다. 베네치아에서 이렇게 짧게 있을 생각을 한 게 잘못이다. 다른 장소에서의 일몰을 보고 싶다. 

나에게 베네치아를 다시 찾을 이유가 생겼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대운하 모습. 일몰 때는 얼마나 더 예쁠까요?!



베네치아 골목에서의 한밤의 질주, “우리 왜 도망가는 거야?”

  

아름다운 일몰 감상 후 맛있는 수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로를 따라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한다. 일몰 후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골목은 이미 어둡다. 우리는 추 뒤를 졸레 졸레 따라 걷는다. 추와 함께하며 나와 심은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게 되었다. 길 찾는 것은 추의 몫이 되었다. 추는 인간 네비게이션이다. 길 찾는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 구글지도로 방향 감각을 익힌 후에는 별도의 네비를 보지 않고도 잘도 목적지까지 간다. 이날도 그랬다. 추의 방향 감각에 따라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어느 순간 들어선 골목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혼자였다면 약간 으쓱한 느낌이 도는 골목길이다. 

“좀 으쓱하다, 그치?”라고 말하는 순간 약 50미터 후방에서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른다.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우리 중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말을 내뱉는 동시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목길을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질주는 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만날 때까지 이어진다. 우리 중 누가 먼저 뛰었는지도 모른다. 한 명이 뛰기 시작하자 왜 뛰는지도 모른 채 우리들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베네치아 미로 골목에서의 한밤의 질주 사건... 비발디 ‘사계’의 배경지라고 알려진 이곳 베네치아에서 질주로 시작하는 겨울 1악장과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장면을 제대로 찍었다. 

  

그런데 심... 우리 그날 밤 왜 그렇게 뛴 거야?”



이탈리아 남자는 친절남과 바람둥이 중 어느 쪽일까?


리알토 수산시장에서 장을 본 것으로 너무나 푸짐한 해산물 파티를 한 우리들은 베네치아의 마지막 밤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는 바포레토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의 야경을 감상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만 조사 부족으로 먼 바다로 나가는 수상버스를 타고 만다. 2번을 타면 리알토 다리 등 본섬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는 배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집 앞 선착장에서 그냥 탄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다음 날 아침 로마광장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 편안하게 바포레토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ㅠㅠ

하여튼 베네치아 본섬의 멋진 야경과 배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는 바람과는 달리 점점 더 본섬에서 멀어지는 노선에 허겁지겁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심과 추가 까르륵 웃기 시작한다. 

“추, 저 선장 나에게 윙크 하는 거 봤어?”

“응, 봤어, 너무 찐하게 윙크 하던데...”


심과 추가 선장의 윙크에 난리가 났다. 사건인즉 이러하다. 조타실 근처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던 중에 심이 조타실에 있는 선장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선장이 너무 잘 생긴 것이다. 심이 추에게 “저 선장 너무 잘 생기지 않았어?”라고 묻는 과정에서 심과 추는 힐끔 힐끔 선장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심이 선장과 눈이 마주치게 되는데, 그 순간 선장이 심을 향해 진하게 윙크를 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윙크를 했다고 한다. 그 중 한 번은 나도 보고야 말았지만... 심은 마치 여고생 마냥  “나에게 윙크 하는 거 봤어?” 하고 흥분한다. 

“저 잘생긴 선장이 나에게 윙크를 하다니...” 그 이후에도 심은 윙크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나, 이탈리아 남자에게 먹히는 얼굴인가봐...” 하며 좋아한다. 

“심~~ 네가 유부녀임을 잊지 말기 바래.” ㅋㅋ   

  

나에게도 이탈리아 남자와의 에피소드가 있다. 몇 년 전 유럽여행을 가며 타이항공을 탄 적이 있는데, 그때 방콕공항에서 환승하기 위해 1시간 대기한 적이 있다. 그때 유럽 지도를 펼쳐놓고 “아나카프리,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인데...” 하고 일행과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옆에서 ‘아나카프리’란 소리를 듣고 있던 두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나카프리?” 하며 자기들은 나폴리 사람이란다. 자기네 도시 얘기를 하니 기분이 좋아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방문을 환영한다며 나폴리 주변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내가 “나폴리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라고 묻자 국민성이 와일드하기 때문이라며 본인만 조심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 남자는 이탈리아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헤어질 때 나폴리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주었다. 

‘이탈리아인이 동양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거야?’ 이탈리아의 친절남으로 인해 잠시 공주병, 아니 여왕병이 도진 기억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남자는 친절남과 바람둥이 중 과연 어느 쪽일까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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