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갑오징어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 느끼기에 시장만한 곳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리알토 시장은 14세기부터 조성된 베네치아의 아주 유서 깊은 시장이며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리알토 시장(Mercato di Rialto)은 페셰리아(Peschiera)로 알려진 어시장과 에르베리아(Erberia)로 알려진 청과시장이 나란히 있으며,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열린다.
리알토 시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지만, 해산물이 매우 싱싱했으며, 종류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거 어떻게 파는 거지? 19유로라고 적혀 있는데 한 마리에 그렇다는 거야? 아니면 1㎏에 그렇다는 거야?”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이제 갓 문을 열어서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구경을 해도 상인이 다가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아마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하나의 관광 코스로 생각해서 실제로 사지 않으면서 둘러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런 시크함(내지는 거리두기)이 편안하고 좋았다. 부르기도 전에 주인이 먼저 다가와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손님이 왔는데 아는 체도 안 하다니... 시크한 것이 아니라 불친절한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새우 20마리만 살 수 있나요?”
“갑오징어는 3마리만 사고 싶은데요.”
소량으로 이것저것 주문하는 심에게 주인은 무조건 다 ‘오케이’ 하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뭘 사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심은 이미 머릿속에 요리가 정해진 양 이것저것 잘도 주문한다. 심이 리알토 수산시장에서 산 품목은 갑오징어, 가리비, 새우,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맛있는 생선 한 마리였다. 가격은 약 51유로.
이걸로 심은 우리에게 어떤 요리를 해줄까? 참, 심은 우리들 사이에서는 쉐프로 불릴만큼 요리를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렇기에 여행 전부터 “알라, 요리는 나에게 맡겨.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줄게”라고 우리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요리 실력은 물론이고, 그 어떤 요리도 30분 안에 해내는 쉐프 심이 주방에서 뚝닥 뚝닥~~ 채 30분이 안 되는 시간에 40, 50대의 입맛을 저격한 현지식과 한식을 콜라보한 멋진 한 상 차림이 등장한다. 가리비는 찜으로, 새우는 버터구이로, 생선은 구이로, 그리고 갑오징어를 비롯해 각종 해산물이 들어간 국물맛이 끝내주는 해물된장찌개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절대 과하지 않는 양념을 쓴다는 것이 이탈리아 쉐프들의 특징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쉐프 심 역시 싱싱한 해산물의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식과의 조화로움을 겸비한 멋진 한 상 차림을 선보인 것이다. 그것도 어제 현지인이 추천한 베네치아 식당에서 먹은 해산물보다 훨씬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갑오징어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이거 무슨 생선이야.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해물된장찌개 국물 맛 정말 끝내준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국물 맛을 낸 거야? 베네치아에서 이렇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다니...”
나와 추는 한 입 먹고 감탄, 또 한 입 먹고 감탄... 이렇게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그 많은 음식을 깨끗이 다 비웠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때의 맛이 또렷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베네치아 해산물이 맛있었던 걸까? 아니면 심의 요리 실력이 출중했던 걸까?’
알라는 현지식만 먹는다며?
돈이 없던 20대 시절, 여행 내내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며 다녔어도 한식은 생각나지 않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바티칸에서 만난 패키지 여행 온 아줌마들이 나에게 아끼고 아낀 거라며 비행기에서 받은 고추장을 주셨지만 그것 역시 안 먹고 한국까지 가지고 올만큼 현지식에 최적화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아주 가끔 햄버거가 생각나 먹고 나면 위에서 부담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좋아하던 햄버거를 점점 찾지 않게 되었다. 여행을 가서도 아침으로 빵보다 누룽지가 더 손이 가는 입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50이 넘으며 나이가 드는 몸에 맞춰 입맛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심과 추가 나에게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한식파인데 먹는 게 좀 걱정되네. 알라는 우리와 달리 여러 번 여행을 갔다 왔는데 먹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
“응, 나는 무조건 현지식이야. 25년 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도 주구장창 맥도널드 햄버거만 먹고 다녀도 끄덕이 없었지.”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음식도 전혀 가리지 않고 현지식을 잘 먹는다는 것이 여행 체질을 자부하는 가장 큰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몇 년 전부터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이번에 심과 추와 함께 여행을 가며 음식을 해먹기 시작하며 사먹는 것보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해먹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얘들아,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까? 사 먹고 들어갈까, 아니면 장을 봐서 집에서 해 먹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대부분 집에서 먹자는 쪽에 손을 들었다. 물론 총무로서 집에서 해먹는 것이 훨씬 더 푸짐하면서도 경제적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 위가 한식을 더 선호했다.
어느날 심이 자신이 해준 요리를 너무나 잘 먹는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알라는 무조건 현지식이라며... 그런데 한식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냐?” ㅋㅋ
50이 넘어가며 내 입맛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입맛이 아닌 위에 변화가 생겼다. 위가 현지식보다는 한식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이렇게 느끼네...ㅠㅠ’ 이제 몸의 변화도 잘 살피며 여행을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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