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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May 19. 2024

09 (때론 혼자 베네치아) 프레임 밖의 베네치아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프레임 밖의 베네치아



"저는 부라노섬을 가지 않겠어요."


우리가 로마에 머무는 3박 4일 중 이틀이 휴일인 탓에 부득이 심과 추의 바티칸 박물관 투어가 미뤄져 베네치아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2박 3일의 베네치아 일정이 더 줄어들어 베네치아 도착이 저녁, 그리고 떠나는 날이 아침이라 실제 베네치아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하루뿐이었다. 이 하루라는 시간은 베네치아를 훑어보기에도 역부족인 시간이다. 따라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왕복 3시간이 걸리는 부라노 섬까지는 무리다. 부라노 섬을 안 가자니 아쉽고... 그렇다고 부라노 섬을 일정에 포함시키면 본섬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고... 본섬에 집중하자는 쪽으로 나의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나는 심과 추에게 최종 결정권을 넘기기로 한다. 

“얘들아, 바티칸 박물관 투어 일정이 미뤄지는 바람에 우리가 베네치아를 실제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뿐이야. 그래서 부득이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아. 첫 번째는 편도로 30분이 소요되는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을 보고 본섬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는 것, 두 번째는 왕복 세 시간이 걸리지만 부라노 섬을 보고 나머지 시간만 본섬을 보는 거야. 어떤 일정을 선택하고 싶어?”

여기에서 강하게 부라노 섬을 가고 싶다고 어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추였다. 첫 번째 일정에 마음이 기울었던 나는 그러면 본섬을 충분히 보지 못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추는 가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부라노섬을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추의 강력한 의견을 반영해 우리들은 베네치아에서의 하루 중 상당수의 시간을 부라노 섬에 할애하기로 한다.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더 유명해진 부라노 섬


그런데 베네치아에 도착한 저녁, 다음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 자리에서 추가 자신은 부라노 섬을 가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추의 강력한 의견을 반영해 일정에 포함시킨 부라노 섬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콘셉트가 ‘같이, 때론 혼자’니까... 하지만 추의 다음 말은 급기야 나의 혈압을 최고치로 올려 열 받게 만들고야 말았다.

“저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내일은 그냥 집에 있으며 이 근처만 조금 다닐까 해요. 멀미가 날 수도 있으니 배는 안 탈 생각이예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다른 곳도 아닌 이곳은 베네치아가 아닌가? 거기다 거금 21유로를 지불한 바포레토 1일 승차권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도대체 왜?? 25유로 하는 바포레토 1일 승차권이 너무 비싸 1인당 4유로의 할인을 받기 위해 한 달 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매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 나라고... ㅠㅠ



그렇다고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추에게 “네가 부라노 섬에 가자고 한 거잖아. 내가 이 표를 싸게 구입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안돼. 무조건 가야 해...”라고 마냥 강요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젤라토를 6번이나 사 먹을 수 있는 거금(?)을 들인 바포레토 승차권을 그냥 날려버리겠다는 추의 태도를 좌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둘의 접점에서 나는 갈등했다. 나의 뜻대로 따라 오지 않는 추에게 화가 났고내 뜻대로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이 내 안에서 강하게 일었다

잠시 나는 숨을 고르고 내 안에서 부글부글 일고 있는 화의 근원을 찾아 들어갔다. 

‘왜 추의 말에 화가 난 거야? 우리의 여행 콘셉트가 ‘같이, 때론 혼자’잖아. 같이 여행을 하면서도 한번씩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일행에서 벗어나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잖아. 추의 저런 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그런데 왜 화가 난 거지? 겉으로는 ‘같이, 때론 혼자’를 내세운 여행이면서도 내 마음 안에는 내 계획대로 심과 추를 좌지우지 하려는 마음이 여전히 있었구나.’     

그렇다. 나는 내가 짜놓은 프레임 안의 베네치아를 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25년 전 베네치아에서 느낀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이들도 고스란히 느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물이 흐르다니... 세계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산타루치아역을 나와 내 눈에 펼쳐진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베네치아 보다 훨씬 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이 자체가 바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비가 내리는 운하로 배들이 떠다니고, 저기 멀리 보이는 미로 같은 길 사이 사이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베네치아는 주 도로가 물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하고 보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수상버스, 수상택시, 곤돌라... 정말 말로만 듣던 수상도로다. 너무 신기하다. <중략>

어지러이 얽힌 물길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고풍스런 건물들... 1층의 현관이 물에 잠겨 있는 집들도 있었고, 빨래들을 늘어놓은 집들, 집들마다 발코니에 장식된 꽃들, 그리고 간혹 이 좁은 운하로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의 모습들... 탄성이 절로 나왔다.   


- ‘안나의 여행 이야기’(25년 전 베네치아 여행 때 남긴 글) 중에서 -



그런데 추가 내가 짜놓은 프레임 안의 베네치아를 거부하고,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는 숨을 고른다. 그리고 추에게 말한다.

“알았어. 그럼 부라노 섬은 우리끼리만 갔다 올게. 그래도 베네치아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몸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면 리알토 다리까지만이라도 한 번 나가봐. 수상버스도 한 번은 타 보고...”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렇게 추는 베네치아에서 내가 짜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일몰 시간에 맞춰 산마르코 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추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감지된다. 오늘 아침까지의 지친 안색은 온데간데 없다. 오히려 왠지모를 들뜬, 내지는 상기된 모습이 감지된다. 

오늘 하루 추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산마르코 광장에서 다시 만난 추

     


추에게 듣는 ‘때론 혼자, 베네치아’

     혼자만의 여행 시작,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나의 에너지는 완전 바닥 상태였다. 로마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캐리어와 수화물로 인해 한 바탕 소동을 벌인데 이어, 로마에서의 빡빡한 일정, 특히 로마 마지막 날 새벽부터 서둘러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하고 베네치아까지 오는 과정에서 나의 에너지는 이미 고갈 상태였다. 이 상태로 다음 날 베네치아 관광을 강행하기란 무리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주장해 부라노 섬을 가자고 했는데 이걸 안 간다고 말해도 될까? 무리를 해서라도 부라노 섬에 가고 싶은 마음과 이후의 일정을 위해 과감히 부라노 섬을 포기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해야 했다. 하지만 베네치아 이후 일정부터는 렌트카 여행이고, 그 여행에서 주로 운전을 담당한 나였기에 지금은 욕심을 내려놓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걸 알라와 심에게 어떻게 전달하지? 누군가에게 ‘NO’라는 말보다는 ‘YES’를 더 강요받으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NO’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살리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 아닌가. 나는 두 눈을 꾹 감고 알라에게 ‘NO’라고 표현했다. 처음엔 나의 ‘NO’에 알라가 당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나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아침 9시 넘어 알라와 심이 부라노 섬으로 출발한 후 나는 좀더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며 드라마를 보았다. 마치 한국에서의 내 방 같이 편안하다. 배꼽 시계가 배고픔을 알려온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나가서 뭐 좀 먹을까?’

...

이게 시작이었다.

  

아무런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상점들을 둘러보며 먹을거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골목을 누비다 어느 순간 나타나는 운하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젤라토 집을 만나면 젤라토를 먹고, 맛있게 진열되어 있는 빵을 보면 곧장 빵집으로 들어가고, 커피향에 매료되어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순간 ‘아, 이게 여행이구나.’를 느낀다. 그러고 보니 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이날 한 것은 특별히 없다. 오직 숙소에서 리알토 다리까지 골목길을 걷고, 맛있는 집이 보이면 들어가고, 수상버스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해 한 귀퉁이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곳에 머무른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부라노 섬을 버리는 대가로 쉼의 시간이 생겼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고갈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채워졌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올라왔다. 


여행 오길 참 잘 했네.’



이날 추에게 베네치아에서의 하루는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고, 여행의 참맛을 보기 시작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계획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프레임 안이 아닌밖에서 추는 추만의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만났다 


이하 사진들은 추가 만난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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