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탈리아 맞아? / 북부 이탈리아 (베로나)
베로나의 대리석 골목길
우리가 베로나에 머무르는 시간은 고작 4시간. 때론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은 욕심에 한 도시에 충분히 머무르지 못하며 도장 깨기 식으로 스쳐 지나가야 할 때가 생긴다. 이곳 베로나처럼... 패키지여행도 아닌데 이렇게 베로나를 스치듯 지나간다는 것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로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미안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줄리엣의 집과 산 피에트로 성에 올라가 베로나 시내를 조망하는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다.
간단하게 허기를 해결하고 줄리엣의 집으로 향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베로나의 골목길에서 오랜 역사의 흔적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갔기에 대리석 바닥길이 저토록 반질반질하게 닳았을까?
비에 젖은 대리석 바닥 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 빛이 운치 있게 다가온다.
촉촉하게 젖은 대리석 바닥 위로 비치는 사람들의 윤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동안 여행한 여러 유럽 도시 중 스플리트 등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의 대리석 바닥이 특히 예쁘다고 기억하는데, 아니다. 대리석 바닥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베로나다. 이곳 베로나는 거리마다 다양한 대리석을 보는 재미 또한 솔솔 하다. 비가 와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베로나의 대리석 골목길이다.
줄리엣에게 이래도 되나?
많은 사람들이 베로나를 찾는 이유는 줄리엣의 집 방문과 아레나 원형 경기장에서 열리는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중 오페라는 여름밤에 열린다고 하니 그건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것으로 패스~~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곳 베로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이지만 이곳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도 있고 줄리엣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가짜로 만든 가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이곳 베로나를 찾는다. 영원한 러브스토리의 향수를 품고...
내가 줄리엣의 집을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곳 줄리엣의 집에는 줄리엣의 비서들이 있어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줄리엣에게 보내면 이곳에 있는 비서들이 줄리엣을 대신해 답장을 보내준다는 이야기가 솔깃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첫사랑을 찾기도 하고, 때론 평생 가슴에 묻어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답신을 해준다니... 비록 문학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사랑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위안의 존재가 되고 있는 줄리엣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줄리엣의 집, 즉 카사 디 줄리에타(Casa di Giulietta)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마당이 있는 3층으로 된 고택이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는 2층 발코니가 보인다. 연인들의 성지답게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빨간 열쇠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아치형 통로에는 전 세계에서 다녀간 사람들의 사연이 벽면 가득 적혀 있다.
줄리엣의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마당 한편에 서 있는 줄리엣의 동상이다. 줄리엣과 함께 사진을 찍겠다고 줄을 서 있는 행렬이 보인다. 우리도 이 행렬에 꼬리를 물고 선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민망하기 그지없다. 하나같이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가? 보는 이도 민망하고 한쪽 가슴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는 이도 민망하다. 알고 보니 줄리엣의 동상 오른쪽 가슴에 손을 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누구나 이런 민망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다.
줄리엣이 가상인물이라서 그렇지 실존 인물이라면 후손들이 성희롱으로 고소해도 할 말이 없을 듯... 그중 어떤 남자들은 줄리엣의 가슴에 손을 대는 것을 넘어 가슴에 키스까지 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줄리엣에게 우리가 이래도 되나?
베로나에서 순찰차에 쫓기다
베로나 하면 또 많이 나오는 사진이 산 피에트로 성에서 조망한 베로나 도시 전경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름다운 베로나 조망 포인트를 실물로 영접하기로 한다. 당초 계획은 푸니쿨라를 타고 산 피에트로 성까지 올라가려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차를 가지고 이동하기로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리가 그만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직진 신호를 좌회전 신호로 착각하고 좌회전을 하고 만 것이다. 마침 신호 위반하는 순간을 목격한 순찰차가 우리를 뒤따라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신호를 위반했는지 조차 몰랐기에 뒤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쫓아왔지만 우리를 쫓아온다고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을 추격(?) 해오던 순찰차가 손을 내밀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하는 소리인지 알아채고 갓길에 차를 댄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나와 추 역시 잽싸게 따라 내린다. 그러자 경찰이 우리에게 다시 차를 타라고 안내한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국제면허증을 꺼내려 하자 경찰은 다시 한번 더 손짓을 하며 차에 타라고 한다. 뒤늦게 알아들은 우리들이 차에 타자 그제야 운전자인 추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너 좌회전 신호 위반 했어.”
“뭐라고요? 아임쏘리... 제가 영어도 못 하고 이탈리아어도 못 합니다.”
경찰은 동양인인 우리들에게 열심히 뭐라 뭐라 설명을 하지만 우리는 실제 못 알아듣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알아들어도 못 알아 들었다.ㅋㅋ
결국 경찰은 추의 국제운전면허증만 확인하고 우리에게 주의조치를 하고 에스코트까지 해주며 우리를 돌려보낸다. 이날 우리는 범칙금을 물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동양인에게 무슨 수로 범칙금을 매기겠냐고...ㅋㅋ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이런 상황에 대비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심과 추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한 이서진 있지? 이서진이 그러는데 외국에서 운전 중 교통 위반으로 경찰에 잡히면 무조건 못 알아듣는 척하라는 거야. 그러면 경찰이 결국 소통이 되지 않아 벌금을 물지 않고 보낸다고...”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 우리들에게 일어난 것이다. 이서진의 조언(?)이 맞았다. ㅋㅋ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우리들에게 베로나 경찰은 끝끝내 범칙금을 물을 수 없었다.
산 피에트로 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엄청 좁다. 일방통행길도 아닌 것 같은데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골목길이 이어진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대로 가고 있는데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좁은 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끝장인데... 조마조마~ 그 순간 네비가 우리에게 기쁜 메시지를 전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디제 강이 붉은빛의 베로나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모습이 마치 태아를 감싸 안은 양수의 형상 같다. 아디제 강의 물소리가 이곳 산 피에트로 성까지 들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베로나 야경도 정말 멋지겠는 걸?”
“이 난간에 걸터앉아 아름다운 전망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벌써 시르미오네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다. 베로나에서의 짧은 머무름이 못내 아쉽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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