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anna Sep 26. 2024

24 같이 가르다 호수, 때론 혼자 시르미오네

여기 이탈리아 맞아? / 북부 이탈리아 (가르다 호수, 시르미오네)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여기 이탈리아 맞아? / 북부 이탈리아 (가르다 호수, 시르미오네)


     


같이, 가르다 호수


겨울 돌로미티에서 선물처럼 우리를 초대한 겨울왕국.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자연이 선사한 놀라운 장면에 우리는 선물을 받은 듯 설렌다. 우리들의 흥분은 돌로미티를 벗어나서도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이탈리아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로마, 베네치아, 돌로미티... 어떻게 이게 한 나라일 수 있지?”

“그러게... 달라도 너무 다른 매력을 지녔잖아.”

“오늘 가게 되는 가르다 호수 마을에서 또 어떤 장면을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돼.”

“사람들이 이래서 여행을 하는구나.”

 

이런저런 즐거운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도로 옆으로 호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에는 ‘가르다 호(Lago di Garda)’라고 적혀 있다. 가르다 호수는 총면적이 약 370㎢로 서울의 반에 이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우리는 시르미오네에 2박 머물며 가르다 호수 인근 예쁜 마을을 찾아 힐링 여행을 할 계획이다. 가르다 호수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다 예쁜 마을에 들어가 가르다 호수가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럭셔리하게 티 타임을 즐길 생각에 벌써부터 즐겁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소도시인 라찌세(Lazise)를 가기로 한다. 라찌세는 이탈리아 호수 마을 중 관광객이 가장 많은 소도시 1위로, 가르다 호수 남쪽에서 조망하는 알프스의 전망이 빼어난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으로 ‘Lazise’ 좌표를 찍고 가는데 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가는 길마다 폐쇄, 어떤 길은 공사 중이라 진입 불가... 이리로 가면 캠핑장으로 막혀 있고, 저리로 돌아가면 사유지로 막혀 있다. 캠핑장을 비롯해 호텔로 보이는 곳 중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돌로미티 지역은 겨울이 성수기인데 반해, 이곳 가르다 호수 마을의 1월은 완전 비수기다. 

럭셔리하게 노천카페에서의 티 타임은 고사하고 카레자 호수에서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들이기에 화장실 해결이 급선무다. 하지만 이곳 라찌세가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1위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볼 수 없고, 문을 연 가게도 전혀 찾을 수 없다. 결국 폐쇄된 캠핑장 근처 후미진 곳에서 우리들의 흔적을 남기기에 이른다. ㅠㅠ 

참 이곳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처럼 노상방뇨 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한 번은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데 심이 흥분해 소리친다. “저기 아줌마 봐. 허연 엉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고 노상방뇨를 하네...ㅋㅋ”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에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엉덩이를 드러내고 대담하게 노상방뇨하는 아줌마를 보며 낄낄대며 흉을 본 우리들인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노상방뇨하는 날이 올 줄이야...ㅠㅠ

   

시르미오네 이틀째 날. 가르다 호수 주변 마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다시 길을 나선다. 원래는 가르다 호수 인근의 여러 마을을 드라이브로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막상 이곳에 와보니 가르다 호수가 생각보다 훨씬 커 인근 소도시인 가르도네 리비에라만 오전에 같이 다녀오고, 오후에는 시르미오네에서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가르도네 리비에라 가는 길은 가르다 호수를 끼고 강변로가 펼쳐진 구간이 일부 있어 드라이브할 맛이 난다. 저 멀리 구름에 감싸인 눈 덮인 돌로미티 산봉우리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시르미오네에서 가르도네 리비에라 가는 길, 가르다 호수 강변 드라이브 코스


시르미오네에서 약 50분을 달려 도착한 가르도네 리비에라 마을 역시 문 연 곳을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찾아간 계절은 1월 초순. 라찌세와 마찬가지로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호수 전망을 즐기며 야외 카페 테이블에서의 럭셔리한 티 타임은 이번에도 실패다. 대신 여기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화장실 문제. 생리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별 수 없다는 걸 이곳 가르도네 리비에라에서 또 한 번 느낀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노상방뇨까지는 하지 않고 주차장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를 찾아 저렴한 커피값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가르다 호수 주변 호수 마을 중 가르도네 리비에라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들에겐 겨울왕국처럼 멋진 선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가르다 호수 마을처럼 실망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겨울왕국을 본 이후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탓인지, 화장실 문제로 제대로 자연경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비수기로 인한 황량한 분위기 탓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우리들에게 가르다 호수 마을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 했다. 시르미오네를 만나기 전까지...


    

때론 혼자 시르미오네


2시 넘어 숙소에 도착한 우리들은 시르미오네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심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나와 추는 각자의 방식으로 시르미오네를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


추는 발길 닿는 대로 가보고 싶다며 앞서 걷더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반면 나는 시르미오네에서 꼭 해보고 싶은 미션 두 가지-첫째는 비긴어게인 3 포스터에 나오는 촬영지인 데크에 가서 앉아 있기, 둘째는 노천온천(Acqua Termale Pubblica)에서 발 담그며 노을 감상하기-를 가지고 길을 나선다. 


비긴어게인 3 포스터가 나오고 난 후 '저기가 도대체 어디야?'라고 관심을 갖게 된 시르미오네 / 출처: JTBC


그런데 나는 이날 완전 길치가 되고 말았다. 이 두 곳을 찾지 못한 채  시르미오네 동네를 헤맸다. 어두워질 때까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근처까지는 갔는데 내가 중도 포기한 것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혼자 걷는 것이 무서워 서둘러 ~~~

하지만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노천온천을 찾다 길을 잃어 만나게 된 마비노의 산 피에트로 성당(Chiesa di San Pietro in Mavino)과 그 주변 공원은 내가 만난 시르미오네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언덕 위의 공원은 지금 계절이 1월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올리브 숲길 사이로 아담한 성당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으며, 성당 주변 마당에는 한가로이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닭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평화롭고 아름답다. 거기에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평화로움의 정점을 더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르미오네에 하루종일 머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시르미오네는 여유를 가지고 발길 닿는 대로 둘러봐야 할 곳이었다. 시르미오네는 해안가 벤치에 앉아 가르다 호수를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장소가 너무 많았다. 이 좋은 곳을 놔두고 왜 다른 마을을 찾아 헤맨 거니?ㅠㅠ


알라가 만난 시르미오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 추는 과연 어떤 시르미오네를 만났을까

추가 만난 시르미오네의 모습은 그가 찍은 사진으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추의 시선으로 담아낸 시르미오네는 기대 이상이었다. 

“와~~ 내가 만난 시르미오네도 아름다웠지만, 추가 만난 시르미오네는 환상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추 뒤를 졸졸 따라다닐 걸 그랬나? ㅋㅋ”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이탈리아여행 #이탈리아북부 #이탈리아북부여행 #돌로미티 #겨울돌로미티 #카레자 #카레자호수 #가르다호수 #가르다 #Garda #가르다호 #시르미오네 #라찌세 #Lazise #라지세 #가르도네리비에라 #가르도네 #리비에라 #시르미오네온천 #시르미오네노천온천 #산피에트로성당 #가르다소도시 #중년여행 #중년유럽여행 #중년유럽자유여행 

이전 23화 23 줄리엣에게 이래도 되나? / 베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