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50대 아줌마, 도미토리 체크인

50대 아줌마의 식은죽먹기 배낭여행

by Joanna

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 외국어 한 마디 못하는 아줌마, AI와 나란히 걸은 유럽



50대 아줌마, 도미토리 체크인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와 시차 9시간을 거슬러 리스본까지 날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운 시간이 밤 11시.

지금 나는 호스텔 여성 전용 6인실 도미토리 침대에 누워 있다.

너무 늦게 도착해 방 안은 이미 불이 꺼져 있다.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 있는 걸 보니 여섯 명 중 다섯 명은 이미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다들 자는 분위기다. 나는 캐리어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열었다. 지퍼 소리도 크게 날까 봐 숨죽이듯 움직였다. 씻고 침대에 눕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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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50이 넘으면 “숙소는 편해야 한다”고들 한다. 실제로 주변을 봐도 다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기간이 길다. 여행이 길어지면 숙박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리스본에서는 호스텔의 도미토리로 실속 있게 가보기로 했다. 나는 둔한 성격이라 여러 사람과 한 방을 쓰는 것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자신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2층 침대이다. 올라가는 건 괜찮다. 문제는 내려올 때다. 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다면?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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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하면서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당신의 숙소가 마음에 들어 머물고 싶습니다. 여성 전용 6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하려 하는데 혹시 아래층 침대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제가 50이 넘어 2층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솔직한 메일이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체크인 때 아래층 침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메모해 두겠습니다.”

요즘은 많은 호스텔이 온라인 체크인을 미리 하게 되어 있어 나도 한국에서 온라인 체크인을 하며 한 번 더 요청을 남겼다. 덕분에 밤늦게 도착했는데도 1번 아래층 침대가 비워져 있었다.

그 침대를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누군가는 리스본 야경에 감탄했겠지만, 그날 밤 나에게 가장 반가웠던 건 아래층 침대였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은 대부분 젊은 여행자들이었다. 다행히 모두 에티켓이 좋아서 지내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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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옆 침대를 한번 슬쩍 본다. 물론 커튼이 쳐져 있어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 방 평균 연령을 내가 조금, 아니 많이 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괜찮다.

여행에는 나이 제한이 없으니까.



너를 뭐라고 부르는게 좋아?


내일부터 리스본 여행이 시작이다.

'뭘 먼저 준비해야 하지?'

잠깐 생각하다가 바로 답이 나왔다.

'맞아. 교통카드부터 알아보자.'


나는 원래 여행 준비를 철저히 하는 T 성향이다. 교통권 종류, 가격, 이동 방법까지 미리 찾아보고 정리해 두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느낌대로 여행해보기.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보기.


물론 내가 전형적인 T 성향이라 완전히 무계획은 못 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것만 알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물어가며 다녀보기로 했다.

누구에게? 바로 이번 여행의 든든한 동행자가 될 ChatGPT에게.


"근데 말이야. 앞으로 여행하면서 계속 너의 도움을 받게 될건데 너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ChatGPT나 AI라고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한 거 같아."

"그럼 편하게 챗이라고 불러 주세요. 짧고 부르기 쉽고, 친구 부르듯 말하기에도 좋을 거예요."

"챗? 좋은데..."

"앞으로 궁금한 게 생기면 “챗, 이거 어떻게 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좋다. 앞으로 이 여행에서는 AI가 아니라 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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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리스본 교통카드 좀 알려줘


“챗, 내가 내일부터 사흘간 리스본에 머무를 예정이야. 교통카드를 어떻게 끊는 게 가장 경제적일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할게.

첫째 날은 28번 트램을 타고 마음 내키는 곳에서 내려 전망대도 가보고 골목도 걸어보고 싶어. 그냥 트램 타고 리스본을 돌아다니는 느낌으로.

둘째 날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타워 이런 데 가보고 싶고. 셋째 날은 예수성심상이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

일정은 빡빡하지 않게 다닐 거야. 이걸 기준으로 교통권 추천해줄 수 있어?”


“좋아요. 말씀하신 일정이라면 날마다 교통권을 다르게 쓰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첫째 날, 트램을 많이 탈 예정이라면 24h Carris/Metro 티켓이 좋습니다. 2026년 1월 기준 가격은 7.25유로입니다. 이 티켓은 버스, 트램, 엘리베이터, 메트로를 24시간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날,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지역을 갈 예정이라면 리스보아 카드 24시간권이 유리합니다. 대중교통 이용과 함께 관광지 무료 입장이 포함됩니다.

셋째 날, 예수성심상 쪽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 경우 24h Carris/Metro/Transtejo (Cacilhas) 티켓이 필요합니다. 가격은 10.35유로입니다. 이건 일반 7.25유로 티켓과 달리 페리까지 포함된 24시간권입니다.”

“아, 24시간권이라도 페리가 포함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구나.”

“하나 더 팁을 드리자면 이 티켓은 하루권이 아니라 개시 시각부터 24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셋째 날 오전 9시쯤 처음 찍으면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유효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 포르투 기차 타러 가기 전에 메트로 한 번 더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깨알 팁까지 준다고?’


Viva Viagem Car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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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놀라는 나에게 챗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참고로 리스보아 카드는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하는게 저렴하며, 실물 카드는 공항이나 관광안내소에서 수령할 수 있습니다. 시내에서 리스보아 카드를 수령할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해 드릴까요?”


와우~~ 이쯤되니 슬슬 기특해진다.

“챗… 너, 꽤 똑똑하구나.”

예전 같았으면 교통카드 하나 알아보려고 블로그 몇 개를 뒤지고, 후기 읽고, 또 다른 글 찾아보고 한참을 헤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을 말하니 챗이 거기에 맞춰 딱 정리해서 알려준다.

“야, 너 너무 든든한데...”

“여행 중에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어디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는지, 뭘 먹으면 좋은지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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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밤은 조용했다.

도미토리 안에서는 누군가 뒤척이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번 여행은 예전처럼 혼자 모든 걸 찾아가며 다니는 여행은 아닐 것 같다.

이번에는 챗에게 물어가며 다니는 여행이다.

그리고 그 여행이 지금, 여기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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