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다시, 28번 트램

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by Joanna

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 외국어 한 마디 못하는 아줌마, AI와 나란히 걸은 유럽



다시, 28번 트램



리스본의 첫 아침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마음속으로 하나 정해둔 게 있다. 첫날은 무조건 28번 트램을 타기.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리고, 걷고, 다시 타는 하루를 보내는 것.


2018년, 처음 리스본에 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28번 트램을 타고 이 도시를 처음 만난다.

트램이 광장을 벗어나자마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 길로 정말 들어간다고?’ 싶을 만큼 비좁은 길이다.

그런데도 트램은 아무렇지 않게 그 골목을 밀고 들어간다.

차와 트램, 그리고 사람들이 한 길 위에서 뒤섞인다.

차가 멈추면 트램도 멈추고, 트램이 서면 뒤의 차도 함께 멈춘다.

뒤죽박죽인데 이상하게 어수선하지 않다.

경적 소리 하나 없이 모두가 그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골목 옆에 세워진 트럭을 보며 ‘이건 진짜 막힌 거 아닌가?’ 싶은 순간, 트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트럭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벽에 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만다. 반면 동네 사람들은 늘 있는 일인 양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리스본의 복고풍 전차 28번.png


창밖에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가게 앞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줌마들,

짐을 들고 골목을 힘겹게 오르는 아저씨,

발코니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할머니.

관광지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삶 가까이 들어갔다가 조용히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날 트램에서 내릴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만다.

그날의 나는 리스본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을 나름 빼곡하게 정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내려야지’ 싶다가도 조금만 더 가볼까 싶어지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종점이다.

시간이 지나고 리스본을 떠올릴 때마다 28번 트램에서 만난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 정확히는 장면이라기보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던 그 느낌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_MG_9563.JPG 28번 트램 종점
20180105_173633.jpg 2018년 28번 트램을 타고 내릴 타이밍을 놓쳐 종점까지 간 나.


8년이 지나고 나는 지금, 다시 리스본에 와 있다.

그리고 처음 28번 트램을 탔을 때의 그 느낌을 안고 다시 트램에 오른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정해두지 않기로 한다.

어디서 내릴지, 어디를 갈지, 아무것도.

그냥 가다가 내리고, 걷다가 다시 타고,

그렇게 하루를 흘러가듯 따라가 보기로 한다.


어디에서 내려도 괜찮을 것 같다.

28번 트램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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