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글지도와 자존심 싸움 중입니다

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by Joanna

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 외국어 한 마디 못하는 아줌마, AI와 나란히 걸은 유럽



구글은 도착했다는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


리스본 도착 첫날이다.

비행기는 연착했고, 출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짐을 찾고 나오니 밤 8시 30분. 거기다 내 캐리어 보호커버는 왜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는지, 찍찍이가 자꾸 떨어진다. 붙였다 떼었다 하느라 또 시간을 쓴다. 결국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탄 시간이 밤 9시다. 그래도 아직까진 마음은 여유롭다. 리스본은 두 번째니까.

카이스 두 소드레 지하철역2.png 한참을 해맸던 호스텔 입구


숙소는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역 근처의 선셋 데스티네이션 호스텔. 역만 가면 끝이다. 지하철도 단순하고, 환승도 한 번이면 된다. 파리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그 정도는 식은죽 먹기다.

그런데 문제는 역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역 옆이에요.”

그 말만 믿고 나는 숙소 위치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역에서 내리면 그냥 보이겠거니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야 구글지도를 켠다.

‘도착했습니다.’

구글은 분명히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호스텔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역을 한 바퀴 돈다. 아니네. 다시 돈다. 혹시 안쪽인가 싶어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다른 통로로 나가본다. 또 돈다.


길을잃다2.jpg


구글은 계속 말한다.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입구처럼 보이는 게 없다. 간판도, 로비도, 환한 유리문도 없다. 몇 번을 더 빙빙 돌고 난 뒤, 처음 구글이 가리키던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춘다. 역사 외벽 한쪽에 붙어 있는 작은 철문. 그게 입구였다. 벨을 누르자 ‘철컥’ 하고 문이 열린다.

‘여기라고? 여기가 호스텔이 맞아?’

반신반의하며 입구 안쪽에 캐리어를 놓은 채 한 층을 올라가 본다. 안내데스크가 떡 하니 있다. 비로소 나의 의심을 거둔다.


구글은 틀리지 않았다. 나의 고정관념인 ‘입구는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이 그 작은 철문을 몇 번이나 지나치게 만든 것이다.



‘리스본 커씨드럴’은 왜 통하지 않았을까?


리스본 4박 동안 뭐 하지? 별달리 세운 계획이 없다. 2018년 첫 리스본 여행에서 배운 게 있다. 여기서는 뭘 해야겠다고 계획하기보다, 그냥 리스본이 건네는 여유에 몸을 맡기는 게 낫다는 것을... 그래도 하나는 해보고 싶다. 28번 트램을 타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서 내리는 것.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 창밖 풍경이 끌리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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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벼룩시장。 창 밖 풍경에 이끌려 트램에서 내린다。


IMG_5359.JPEG 여기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1일 교통권을 끊고, 28번 트램 시작점인 Martim Moniz로 간다. 여기까지는 구글지도를 열심히 보면서 잘 찾아갔다. 역시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익숙하다.

IMG_5314.JPEG 28번 트램의 시작점인 Martim Moniz. 호텔 문디알(Hotel Mondial)을 찾으면 쉽다.


문제는 트램에 올라탄 뒤다. 분명 트램을 타기 전에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 갈까?’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의 마음이 리스본 대성당으로 가자고 한다. 리스본 대성당? 정확히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확신이 없다. 그 순간 구글지도를 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8번 트램 타는 곳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보던 앱을, 막상 트램 안에서 구글지도를 종료시킨 것이다. 그 덕분에 현재 내가 있는 위치를 모르겠다. 당황한 나는 급하게 앞으로 가 운전사에게 말을 건넨다.

“히어 리스본 커씨드럴?”


'리스본 커씨드럴'을 못 알아들으신 28번 트램 기사님.


운전사가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발음이 안 좋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운전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그런 운전사에게 ‘리스본 커씨드럴’을 몇 번을 더 말했는지 모른다. 그 순간, 옆에서 들리는 한국어.

“여기서 내리시면 돼요.”

그날의 수호천사다.

나는 그렇게 첫 목적지에 내린다.

평소 휴대폰을 최소한으로만 쓰는 습관으로 인해 여행 와서도 자꾸 휴대폰을 손이 아닌 가방 속에 넣어두느라 정작 필요한 순간에 구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빨리 휴대폰과 한 몸이 되어야 할텐데...


참... ‘Lisbon Cathedral(리스본 커씨드럴)’을 운전사가 못 알아들은 이유가 나의 발음 때문일까, 아니면 운전사가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일까? 참고로 리스본 대성당의 포르투갈어는 ‘Sé de Lisboa(세 드 리스보아)’이다. 나는 내 발음이 후져서가 아니라 운전사가 영어를 못 알아들은 걸로 정리한다.ㅋㅋ


리스본대성당2.png 갑자기 이 장면이 보고 싶어 리스본 대성당에서 즉흥적으로 내린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ㅋㅋ



왜 나는 능숙한 가이드를 가방에 넣어두는 걸까?


오전에 리스본 대성당과 산타루치아 전망대를 다녀온 후 다리도 아프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을 겸 잠깐 숙소에 들러 쉰다. 그리고 오후에 LX Factory에 있는 서점에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선다.

침대에 누워 검색을 하니 15번 트램을 타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앱을 켜지 않는다. 이놈의 습관...ㅠㅠ 나의 감각만 믿고 ‘LX Factory 방향은 저쪽이니까, 정류장도 저쪽에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건넌다. 내가 생각하고 간 정류장에는 15번 트램이 서지 않는다.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고 구글지도를 켠다. 정류장까지 약 600미터라고 나온다. 600미터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횡단보도가 유난히 많았다. 그렇게 나는 숙소에서 600미터 떨어진 정류장에서 15번 트램을 탄다.

그런데 트램이 출발하자, 점점 숙소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숙소 바로 앞 정류장에서 멈춘다. 그제야 알게 된다. 15번 트램 정류장은 도로 가운데 있었는데, 방향만 믿고 길을 건너 찾으니 없을 수 밖에...


‘아… 또네.’

구글 앱만 켰다면 쉽게 정류장을 안내 받았을텐데 또 결정적인 순간에 앱을 켜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나는 능숙한 가이드를 옆에 두고 자꾸 길을 헤맨다. 리스본에 도착한 어제부터 나는 마치 처음 유럽배낭을 온 초보자인양 자꾸 길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헤매임이 싫지 않다. 마치 처음 혼자 배낭여행을 갔던 1999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오직 지도 한 장만 들고 유럽을 헤매던 완전 초보 시절. 지도를 펼쳐 들고도 방향을 몰라 빙빙 돌던 그때.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도 감이 없던 시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며 피식 웃음이 났다.


“이거 유럽여행 마니아라고 어디 가서 말 못하겠는데...ㅋㅋ”

리스본에서 나는 그저, 구글지도와 아직 친해지지 않아 서먹한 50대 아줌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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