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아줌마의 식은죽 먹기 배낭여행
공짜는 절대 놓치지 않는 아줌마 근성
마일리지 항공권을 검색하는 시간은 늘 기분이 좋다. 마치 공짜로 여행 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평소에도 스트레스가 잔뜩 쌓이면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항공권을 쳐다보며 여행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이번 여행의 시작도 그랬다. 한참 스트레스가 오르고 올랐을 때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항공권을 찾아보며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로 나올지 고민하는 그 시간을 즐겼다. 그러다 점점 가고 싶은 마음이 자란다.
마지막은 언제나처럼 파리지. 언제부턴가부터 내 여행의 마침표 같은 도시가 된 파리. 그렇다면 IN 도시는 어디가 좋을까? 비교적 일찍 검색을 시작했더니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고민 끝에 고른 도시는 리스본이다. 2018년 리스본과 포르투를 여행한 이후, 포르투갈은 나에게 꼭 다시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일주일살이를 한다면 꼭 넣고 싶었던 도시들이었고, 자연스럽게 다시 떠올린 선택지였다. 게다가 프랑스보다 물가 부담이 덜하다. 비싼 프랑스와 저렴한 포르투갈의 조합은 여러모로 잘 어울린다.
‘이 조합 좋은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항공권 발권 완료.ㅋㅋ 이렇게 얼떨결에 IN 리스본, OUT 파리 여행이 시작된다.
부산에서 10시 25분 출발. 인천에서 리스본행 12시 35분 출발. 인천 경유 시간은 단 1시간. 비행기에서 내려 리스본행 게이트까지 겨우 이동할 수 있는 빠듯한 시간이다. 아무래도 이번엔 카드 실적으로 이용 가능한 마티나 라운지는 포기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게이트로 가는 길에 마티나 라운지가 내 눈에 포착된다. 나는 시계를 본다.
“어…? 20분?”
아줌마는 계산이 빠르다. 아니, 공짜 앞에서는 누구보다 민첩하다. 해당 카드와 항공권을 내밀고 바로 입장. 음식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착석. 20분 동안 두 접시에다 맥주 한 잔까지 깔끔하다. ㅋㅋ
게이트에 도착하니 마지막 승객 입장 중. 이 정도면 완벽한 타이밍이다. 출발부터 이 정도면, 감 좋지 않나?
좌석에 앉는다.
2014년 이후, 너무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창밖으로 비행기 날개가 보인다. 이 장면은 언제나 1999년, 처음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를 보고서야 비로소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소환된다. 그 시절 내가 믿은 건 종이 지도와 여행책자 한 권뿐이었다. 스마트폰도, 구글지도도 없던 시절.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나는 무모했다. 아무 데서나 잘 잤고, 낯선 도시를 혼자 걸어도 두렵지 않았다. 그 첫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여행 체질이구나.’
20대의 나는 무모했다면, 50대의 나는 여유로운 마음이 커졌다.
27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무모함 대신 경험을... 그리고 ‘덜 보면 어때?’ 하는 빠듯함 보다 여유로움이 선사하는 여행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여행을 시작하며 상공에 떠오르는 비행기의 날개를 바라보는 그 순간의 감정은 언제나 같다.
‘콩닥 콩닥...’ 설렘의 순간...
기내식은 반드시 완주합니다
유럽행 비행기에서는 두 번의 식사와 한 번의 간식이 나온다. 이 기내식을 다 먹고 나면 도착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여행 체질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잔다는 것. 비행기 안에서 내가 오롯이 깨어 있는 순간은 기내식이 나올 때 뿐이다. 아무리 깊이 잠들어 있어도 음식 냄새가 스치거나 카트가 가까워지면 신기하게도 눈이 떠진다. 하지만 먹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마터면 중간 간식을 놓칠 뻔했다. 너무 깊이 잠들어 핫도그가 나왔다는 것도 모른 채 그대로 지나갈 뻔한 것이다. 눈을 떴을 때 내 자리 앞에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주무셔서 간식을 못 드렸습니다. 필요하시면 승무원을 불러주세요.”
간식을 놓치다니. 그건 내 여행 이력서에 오점으로 남을 일이다. 나는 바로 벨을 눌렀다. 잠시 뒤 핫도그와 오렌지주스를 받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먹었다.
잠에서 다시 깨자 모니터에 도착 예정 시간이 떠 있다.
리스본까지 30분.
창밖의 구름이 조금씩 낮아진다.
기체가 살짝 기울고, 엔진 소리도 달라진다.
이제 정말 도착이다.
문이 열리면, 다시 여행이 시작된다.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