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서무 맡겠습니다. ”
“응? 서무 해봤어?”
“넵! 휴직 전에 서무 담당이었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그래. 그럼 잘 부탁해요.”
둘째 아이를 낳고 두 번째 복직이다. 일도 척척 잘하는 데다 잘 생기기까지 한 베테랑 대리가 발령이 나고, 오랜 본점 근무에 복직자인 내가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영업의 최전선인 이곳은 경륜을 바탕으로 밀리지 않는 입담을 뽐내며 일처리를 하는 영업통을 원한다. 손도 빨라 전산처리도 신속한 직원을 선호한다. 그런데 나는 영업점 경험도 부족하고 2년이라는 긴 업무 공백이 있는 애 둘 딸린 복직자..
아직 정식 출근 전이지만 일 잘하는 대리의 송별회 겸 내 환영회에 참석한다. 회식 자리는 온통 발령 난 대리에 대한 서운함을 성토하느라 난리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이 얼큰해지자 후배 한 명이 구석에서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선배 한 명이 나에게 소주잔을 건넨다.
' 봤지? 일 잘하는 대리가 이런 존재였어. 너,, 일 못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이런 카오스를 봤나. 환영회도 하는 거라며!! 설상가상 술이 얼큰하게 오른 지점장님께서 한 말씀 더 거든다.
" 안 그래도 우리 일 잘하는 대리가 빠질 때가 돼서 새로 올 직원은 어떤지 인사부에 살짝 물어봤어. 아 근데 계속 본점에 있었고 복직자라잖아. 당장 할 일 많은 우리 지점에는 오면 안 될 것 같아서 절대 보내지 마라 했지. 허허. "
그런 내가 발령이 나서 몹시 속상해하신다.
나도 속상하다..
8년 전 둘째를 낳고 복직할 때의 이야기다. 직책은 과장이었는데 과장 이상은 책임자라고 해서 관리업무가 추가된다. 복직 후 첫 책임자 회의 시간, 인사이동 후폭풍을 수습하는 자리다. 새로운 업무분장이 무엇보다 시급한 순간, 서무 책임자를 누가 할 것이냐를 두고 침묵이 오간다. 서무는 소위 잘해도 본전, 못하면 욕이나 얻어먹는 온갖 잡무 투성이.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손 들었다, 살짝 고개 숙이고 있다 지점장님께서 점찍어 둔 직원에게 슬쩍 떠보면 마지못해 승낙하고 나머지 직원은 안도하게 될 줄 알았겠지. 어쩌면 그게 나였을 테고. 나란 사람 알지도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싫다고 한 지점장님께는 그리 시시한 사람은 아니라 항변하고 싶고, 첫 만남에서 무례했던 직원들에게는 음.. 그래 하찮은 서무 일이라도 해주면서 그래도 친하게 지내보자 싶다. 지금 이 사태를 수습하자면 말이다. 일 잘하고 잘생긴 대리를 밀어내고 컴백한 미천한 복직자에게는..
순간 흡족해하는 지점장님의 입꼬리와 다른 책임자들의 안도감이 느껴진다.
(다음 편에..)
<사진 출처 :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