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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Mar 29. 2022

직장인의 초상(2/3)

워킹맘, 퇴사의 세계

서무 하나 추가하고 좀 더 희생하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 천둥벌거숭이 아들을 둘씩이나 키우며 정신줄 놓고 살았는데 이 정도쯤이야 싶다. 서무를 맡으니 직원들도 나한테 부탁할 일이 많다. 어찌 되었건 나를 찾아야 해결되는 일이니만큼 그게 잡일일지언정 왠지 회심의 미소가 지어진다.


수시로 지점장님 얼굴을 봐야 하니 지점장님과도 친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엔 나를 못 미더워했으나 질주 본능 B형 여자인  못 따라오는 사람도 생긴다. 통쾌하게 잔소리도 해본다. 그래도 주거니 받거니 엎치락뒤치락 직원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도 없어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다. 이른 아침 7시 세콤, 객장 가득 찬 대기 인원으로 건너뛰는 끼니, 집단대출로 이어지는 야근. 그 어느 직장인이 바쁘지 않겠냐만 다이내믹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정신없는 틈 복직자인 나 역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하찮았던 복직자는 든든하고 안정적인 조직에 안착하며 정상궤도에 도달했다. 다시 은행원.




그때는 그랬다. 무엇보다 일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2년씩 두 번이나 휴직한 경단녀를 키워주는 회사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만큼 더욱 열심히 일하는 건 말해 뭣할까. 참 다행인 건 은행생활 대부분이 둘째를 낳고 복직했을 때처럼 즐거운 기억이 많다는 것. 이 삼 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하는 은행원이기에  매번 새 환경에 적응하고 나를 맞춰야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낼 때는 성취감을 느낀다.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다.


아침 출근길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지하철 환승 구간을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면서도 이런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고 점심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보람차다. 실적을 닦달하던 상사가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블랙 컨슈머가 있어도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이며 욕이라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 든든하다.


하지만 가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때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 공감하지 못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급하고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람, 이 일은 어려워 애시당초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뭐가 힘들지? 그냥 하면 되잖아."

" 안 하려고 니까 더 힘든 거지"

" 피할수록 꼬이는 거야"

" 피할 수 없다면 즐겨!"


(다음 편에...)


<사진 출처 :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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