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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06. 2020

문학의 길

함께 가는 도반들께


문학, 함께 가는 도반들께
이정아 / 수필가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명함이 간단하다. 나는 그 명함조차 없는 백수이긴 하지만.

대개 문인들이 글 청탁을 받으면 원고 말미에 약력을 3줄 내외로 써 줄 것을 부탁받는다. 첫 줄엔 등단 연도와 등단지, 둘째 줄엔 출판한 저서의 제목을, 셋째 줄엔 수상 이력을 쓰게 마련이다. 작가라면 기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더러 세 줄을 훨씬 넘겨 장황하게 쓰면 청탁자에게 왕따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작가에겐 작품이 중요하지 약력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석박사 학위에다 요즘 트렌드인 사이버 대학 학력까지 나열하거나 글과 상관없는 온갖 감투에 듣도 보도 못한 상을 받은 이력까지 쓰는 이가 있다. 약력이라기보단 소설에 가깝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가장 글을 잘 쓴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산다. 아마도 그런 착각이 없다면 글을 지속적으로 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글 연습도 안 한 채 명편도 아니고 절창도 아닌 것, 심지어 인터넷에 흔히 떠다니는 글 조각을 짜깁기하여 겨우 한 편 만들어 신문사로, 잡지사로 돌리며 재탕 삼탕을 한다. 보약도 아니고 곰탕도 아닌 것을 우리고 또 우린다. 게으르면서 이름은 내고 싶은 이들의 작태이다.

천의무봉의 글을 써야 하는데 남의 글에서 좋은 것만 따온다고 명작이 되는 건 아니다. 시접이 다 보이고 재봉선도 뻔히 보이니 좋은 글 썼다 안심할 수 없다. 이 사이버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함부로 갖다 쓰면 탄로 나게 되어 있다.

자작 글이 없는 작가는 물건도 없이 손님 들기를 바라는 무모한 상점 주인과 같다. 부지런한 작가는 같은 글을 이곳저곳에 중복 발표하지 않는다. 글 쓰는 이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등단작이 대표작이 되어  등단 이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이도 많이 보았다.

반면 어떤 이들 중엔 부지런이 그 도가 지나쳐 글 한 편 쓸 때마다 공모전에 내보내는 이가 있다. 한번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치면 그것으로 무슨 글이든 쓸 자격이 있다는 검증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신인상을 여럿 받고 그렇고 그런 글 대회에 자주 나가서 수상 이력만 20줄이 넘는 사람들이 있다. 글짱이라 존경받을까, 푼수 없다 조롱받을까 곰곰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못 미더우면 편 편을 확인받고 싶을까.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드는 일이다.

글 쓰는 일은 마라톤과 같다. 맨발로 먼 길 가기 힘들기에 신발 하나 장만한다는 의미로 등단 절차를 거친다. 여러 신을 겹쳐 신는다고 잘 뛰는 건 아닐 것이다.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라는 말이 있다.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넓게 벌려서는 오래 걷지 못한다'는 뜻으로 노자 '도덕경' 2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일 터이다.

문학에 처음 입문했을 때의 그 떨림으로 기본에 성실히 임하다 보면, 나만의 울림 있는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매일 글 연습을 하며 문학의 신이 임하기를 함께 기다리자.


2018 미주 펜문학

07062020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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