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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28. 2021

한글 교육

객지에서 고생하는 한국말


객지에서 고생하는 한국말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아이는 한국말을 썩 잘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함함하다 하니,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 집에서 엄마 아빠가 한국말만 쓰고 아이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딴에는 애를 썼으니 말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는 한국계 사립학교를 보냈다. 같은 학비로 훨씬 명문? 학교를 보낼 수 있었는데도, 남들의 의아한 시선을 저버리고 한국 학교(Wilshire Hankook Academy)를 보냈다. 대한민국 정부의 보조를 받는 그 학교는 하루에 한 시간씩 한국어 시간이 있다고 해서였다. 오로지 그 이유에서 그 학교에 6년을 다니니 쓰고 읽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주말 한글학교는 내가 선생이었으므로 자동으로 데리고 다녔고, 방학 때마다 한국에 가서 조카들과 어울리게 하고 한국에 있는 학교와 교환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밤에 자기 전 한글 성경을 3 소절씩 일기장에 쓰게 하기를 5년간 하니 억양도 표현도 제법이다. 그 학교는 초등학교 과정밖에 없었으므로, 중 고등학교는 미국 학교를 보냈어도 어려서 배운 한국어 실력은 그대로이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아이에게 말을 시켜 우리 아이의 한국말 실력을 은근히 과시하곤 했다.
"어머 어머 무슨 아이가 저렇게 한국말을 잘해요?"이런 칭찬 듣기를 즐겼던 것이다. 아이도 엄마의 그 교만한 수법을 알아채서 무척 싫어했다.


오래전 우리의 이민 초기만 해도 이곳의 부모들은  아이가 어서어서 영어 잘하기를 바랐다. 한국말은 못 해도 좋으니 영어만 빨리 익혀 주류사회의 일꾼이 되었으면 해서 완벽하지 못한 영어를 구사하는 부모라 해도 집에서 아이에게 영어로만 대화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한국말이 완벽한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온전한 우리말이 영원히 계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많이 사고가 달라져서 이중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에게 혜택이 더 주어지는 글로벌 시대에 있다. 그러니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만큼 찬스가 더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 교육에 보다 적극적인 세태가 되어 다행한 일이다.

아들아이가 어릴 적에 "까치 까치설날은~" 하는 동요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 노래를 잘 따라 하다가 "색동저고리~" 하는 대목이 나오면 여지없이" 아~ 드~러~"(아이 더러워) 이런 말을 추임새처럼 넣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 도대체 왜 그러니?" 물으니 “왜 옷에 새똥이 묻은 걸 입어요? 한다. 말은 잘해도 의미 전달이 잘 안 되는 면이 있구나 생각했다.


중학생용 천자문이라는 책을 구해 기초 한자를 가르치니 금상첨화. 간단한 4자 성어를 배우고 나더니 “아이고 힘들다. 명대로 못 살겠네.” 이런 나의 말에..."엄마, 가인박명인데 염려 마세요. 엄마는 오래~ 살 거예요~"이런 응용도 하니 말이다. 조크가 아닌 사실인가?

어제 아들아이가 돌아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봄방학을 맞아 일주일간 집에 다니러 온 것이다. 대학 신입생인 아들아이는 집을 떠난 지 7개월이 되었다. 모처럼 세 식구가 모여 ‘대장금' 비디오를 봤다. 한국영화나 비디오에 취미가 없는 아들도 집안 화목의 차원에서 끼었다. 제 아빠의 노트북을 펼쳐 놓고 친구들과 채팅을 하면서도 옆에 앉았다.


최 상궁의 그동안의 음모가 다 드러나고 상감 앞에서 대감이 질책을 받는 장면이었다."전하 통촉하소서. 전하 전하~" 하니 아들이 옆에서 거든다. 저게 언제 시대냐고. 15세기 정도가 아닐까 내가 대답했다. 아들 왈 " 그럼 저 드라마. 틀렸어요. 그레이엄 벨이 전화 만든 것이  1870년인가 그런데 웬 전화?"이런다. 그 드라마 속 대화를 "전화 통화하소서~" 이 정도로 이해한 모양. 남편과 나는 마주 보고 박장대소. 한편 엄청 실망했다. 그 말 한마디에 아들의 한국말 실력이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SAT II 시험에서 한국어를 선택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아들아이. 대학에 가자 한국말을 열심히 쓰지 않으니 ‘객지에서 고생하는 한국말'은 아들의 입을 통해 마구 쏟아져 나올 조짐이 보인다. 어쩌나 공든 탑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 걱정이 되는 밤이다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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