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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26. 2022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욕실에 새 타월을 걸었다. 한국에서 올해 창간한『그린 에세이』의 기념품이다. 태평양을 건너온 연둣빛 수건이 곱기도 하다. 욕실이 다 환해졌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타월을 돈 주고 산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을 오가며 여행 짐 사이에 충격방지용으로 넣어가지고 오기도 하고 이곳에서는 교회 창립이다 동호회다 하며 얻어온 수건을 쓰기 때문이다.

 

욕실의 타월을 정리하다 보니 1979년이라고 쓰인 ‘전력노조 34주년 기념오렌지색 타월이 있다. 1983년도 ‘춘계 사내 낚시대회’ 2003 ‘경부고속철도 준공’ 2004 ‘선수  포럼등등. 타월에서 집안의 내력과 가족의 행동반경까지도 짐작할  있다. 어지간히 버리지 못하고 살았구나 생각했다. 얼굴 닦는 수건이 낡으면 발수건으로 갔다가 수명이 다하면 세차용이나 걸레로 활용하면 되는 것을 무에 아깝다고 여태 수건 함에 모셔두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형국이니 30동안  집의 구석구석은 알만하지 않은가?

 

면역억제제라는 약을 평생 써야 하는 나의 병이 먼지나 곰팡이에 민감하여서, 치료를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올 때쯤엔 안방을 마루로 깔아 깨끗하게 환경미화를 해 놓겠다고 약속했었다. 남편은 내가 돌아와도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얼 버리고 무얼 남겨둘지 몰라서 내가 진두지휘를 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나?


홈디포에서 사 온 커다란 투명 수납박스에 하루 한 통씩 정리해 차고로 내보내면, 방을 비울 수 있다기에 숙제처럼 버리고 정리한 것이 벌써 열흘이 넘었다. 옷을 작은 동산만큼 버리고 오랫동안 끼고 살던 서랍장이며 머릿장도 내어 놓았다. 실은 내놓은 걸 다시 들여오고 몇 번이나 망설인 정이 든 물건들이다. 정리를 돕던 남편회사의 라틴계 직원이 가져가도 되냐고 묻기에 가구용 왁스로 잘 닦아주었다. 서랍장 위의 장식품도 함께 가져가라 했다.

 

오래전 남편이 텍사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의 첫 직장을 잡아 엘에이에 왔을 때, 사장님 댁에서 얻어온 앤티크 책상을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 집의 서랍장도 직원의 집에선 유용하게 쓰일지 모른다. 우리처럼 오래오래 쓰길 바란다.

 

아프고 나니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인다. 허전함을 소유로 커버하려고 했던 지난날 들이 참으로 헛되고 헛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젊음과 세월과 생명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붙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전에 버리려고 했으면 꽤나 망설였을 물건이나 옷가지를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 아픈 것이 단순한 고통에 그치지 않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주었다면 내 병에 감사할 일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정아/수필가 


오래전 글을 어느 카페에 게시해 놓았기에

기록의 차원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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