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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Feb 28. 2022

봄을 기다리며

접인춘풍 임기추상



입춘이 지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뒷마당의 매화는 피었다 지고 어제 내려가 보니 자두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봄이 오기는 오나 보다. 그러나 요 며칠 봄바람이 매섭고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이상 추위가 오면서 어린 새싹들도 헷갈리는지 씨를 뿌린 텃밭엔 아직 소식이 없다. 봄 같지 않은 봄이다. 하지만 이미 출발한 봄이 오고는 있으니 조금 더 참으면 당도하리라.


봄바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기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릿발처럼 대하라"는 말로 학창 시절에 배운 사자성어인데 접인춘풍을 배우면서 임기추상을 함께 배웠다.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나를 살피며 남도 돌아보라는 듯 댓 구를 단 의미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가을 서릿발같이 냉정하고 단호하게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봄바람같이 너그러운 관용의 미덕을 보이라는 말이지만 우리는 종종 거꾸로 대입하며 살고 있다.


소인들은 일이 잘 풀리면 내 탓이지만 안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며, 성공은 자기 덕이고 실패는 남 탓이라 한다. 공자님도 군자는 자신을 탓하고 소인은 남 탓을 한다고 논어에서 말씀하셨다. 모든 일을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소인일 수밖에 없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못된 비바람이 불어 새롭게 자라는 채소와 싹들을 모질게 괴롭히지만 사시(四時)를 어길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 자연의 섭리이며 우리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진리가 아닐까.


주일예배를 마치고 모인 전도회 모임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새 목사님 청빙 과정에서 의견이 맞섰던 이들의 앙금이 터진듯했다. 옆에서 보다가 가슴이 덜덜 떨리고 무척 놀랐다. 한편 바다 건너 고국은 선거를 앞두고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파당으로 분열된 작금의 사태. 우크라이나는 또 어떤가. 국제 정치판에 끼어 선량한 국민들만 우왕좌왕 피해가 크지 않은가?


“주여 살피소서. 주여 침묵하지 마소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살기 급급해 주위에 무심하던 나 같은 이도 이런데, 서로 맺힌 마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할까. 하늘의 위로가 필요한 시기이다.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새로 햇빛을 받은 말들이/ 따뜻한 물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나희덕 시인의 '이따금 봄이 찾아와' 전문)


속히 봄이 왔으면 좋겠다. 따스한 봄바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길 기원한다.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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