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슬러시 기계를 맞닥뜨렸다. ‘진짜 오랜만에 슬러시 기계를 본다.’ 싶었는데 그 순간 여름날의 기억 한 조각이 팍 튀어 올랐다. 어렸을 적 여름마다 먹던 형광색 슬러시의 쨍한 맛.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서는 색색깔 슬러시를 담은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매직으로 크게 쓴 ‘300원’이라는 글씨가 붙은 슬러시 기계를 보며 주머니 속 동전을 헤아려보고는 했다. 온몸이 새까매지도록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친구들과 함께 종이컵 한가득 받아먹던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연두색 형광색 슬러시들. 머리가 띵-하게 아려오는 달콤함에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먹기를 멈추지 않았던 맛들. 햇빛으로 달궈진 정수리와 땀으로 젖어 있던 이마를 조용히 식혀주는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조금씩 사라져가던 달콤함들. 아쉬워서 꾸깃꾸깃해진 종이컵을 탈탈 털어 남은 한 방울까지 먹던 기억들. 여름이 끝날 때까지 매일매일 형형색색 슬러시가 선풍기와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며 더위를 식혀주었고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던 일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요즘은 슬러시 파는 곳을 보기 힘들어졌다. 슬러시 파는 곳을 찾더라도 이제는 사 먹기 머쓱해지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카페에서는 슬러시와 비슷하게 ‘스무디’라는 음료를 팔지만 어쩐지 너무 비싸고 순한 맛이다. 스무디로는 슬러시의 어딘지 모르게 불량하고 쨍한 그 맛을 떠올리기 힘들다. 더군다나 300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머리가 띵 울리도록 먹던 차가운 달콤함이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이 더운 여름날, 나는 자외선이 무서워 꽁꽁 몸을 감추는 몸을 사리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젠 얼음 가득한 아이스 커피를 사 먹을 테니까. 300원짜리 슬러시는 추억 속으로 막 사라지려고 하고 있다.
슬러시(Slush)라는 단어는 주로 눈과 함께 쓰이는 형용사로, 눈이 녹아 질퍽해진 상태를 뜻한다. 단어로 보자면 슬러시는 ‘얼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녹아’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정말 녹아버린 눈더미 같이 보인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어울리는 단어가 왜 이 음료의 이름이 되어 버린 걸까. 반쯤 녹아버린 눈이 여름까지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겨울의 눈을 모아다가 기계에 넣고 빙글빙글 돌리며 여름에 꺼내어 먹는 상상을 해본다.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주황색 슬러시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선다. 등 뒤로 와 닿는 햇볕이 뜨겁다. 얼른 빨대를 입에 물고 슬러시를 한 모금 들이킨다. 불량한 오렌지 맛이 입안을 튀기며 돌아다닌다. 순식간에 머리가 띵 울린다.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나 어른이 되는 동안 수없이 내리고 쌓였던 눈과 눈더미(Slush)를 떠올린다.
‘겨울을 지나 여름으로 오느라, 어른이 되느라 고생했어.’
신나게 놀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란 내가 묻는다. 슬러시 하나에도 행복해지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300원짜리 슬러시의 계절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