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를 인정했다고 자신했지만 완벽한 착각이었다.
세상에 나만 비껴가는 그런 특별한 예외는 없다. 다수가 하는 일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0대 때 걸맞은 사춘기를 겪었어야 했다.‘나는 누구인가’라는 거창한 존재론적인 질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도는 고민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세상을 적대시하거나 또는 나를 찾는 격정적인 사춘기는커녕 그런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내가 속한 그 공간에서 최고이길 원했고, 그에 뒤따르는 화려한 찬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춘기로 허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물론 사춘기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감정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쓸데없는 방황이라고 치부하고 휩쓸리기를 거부했다. 한정된 감정 에너지를 허튼 곳에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그 공간, 그 위치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를 향한 '모두의 좋아요’였다.
대학생이 되면서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독립했다. 어른 흉내를 내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셈이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했냐고? 전혀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대학 문턱을 넘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을 떠날 때도 나를 향한 '모두의 좋아요’가 필요했다.
꽤 괜찮은 곳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꽤 괜찮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적어도 내겐 대체로 만족할 만한 사회생활의 첫출발이었다. 애초에 설정했던 결승선은 언제나 또 다른 출발선이 되어있었고, 그럴 때마다 더 예리한 경쟁의 잣대가 적용됐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향한 '모두의 좋아요'가 변함없이 필요했다.
사회생활 중간 지점쯤 운 좋게 새로운 출발선에 설 기회가 생겼다. 주변의 응원으로 잠시 우쭐해졌다. 하지만 용감한 결정에 뒤따른 현실은 만만치 않았고 그 후로 나는 전력 질주를 선택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나를 향한 '모두의 좋아요’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순간순간의 부대낌에도 온갖 애를 쓰며 전진하는 날 대견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나의 주특기는 단거리가 아닌 오래 달리기라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숨을 참고 달렸다.
돌이켜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평범의 범위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여러 면에서 평범한 나를 쿨하게 인정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평범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나의 인정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러다 보니 매번 범상치 않다는 평가를 갈구하면서 쉼 없이 내달렸다. 중증의 인정 중독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어찌 보면 남보다 많이 늦게 막다른 길을 마주하게 됐다. 더 달릴 여력은 있지만 어디로 달려야 할지 막막해진 것이다. 역주를 하고 코너를 돌 때마다 시원한 물을 건네며 날 뜨겁게 응원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수가 겪는 일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나를 알아가는 시기를 평가절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대가로 이제와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고, 비상 깜빡이를 켜버린 꼴이 됐다. 좌회전? 우회전? 아니면 유턴? 그렇지 않으면 다시 직진?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독백을, 푸념을 그리고 다짐을 꾹꾹 눌러쓴 글이라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소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를 갈구하는 인정 중독 증세를 미처 자각하지 못하거나, 인정 중독에 허우적 되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숨을 꾹꾹 참고 있거나, 또는 인정 중독의 탈출구를 치열하게 찾는 그 누군가에게 조그만 위로와 공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세련되던 투박하던 나의 고유한 무늬를, 정해진 주제가 아닌 자유형식으로 그리기로 결심한 나에 대한 응원도 감히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