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 인정 중독입니다
첫 번째. 평범의 역설
평범하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인정한다. 평범이란 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단어다. 평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일관된 잣대 같은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이고 그때그때 감정과 상황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지는 평범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어다.
굳이 예를 들자면 누군가에겐 지겹도록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는 평생 잊지 못할 절절한 하루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칠법한 평범한 외모가 누군가에는 한평생을 바치고 싶다는 비장한 각오를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매력일 수 있다. 평범한 시간이 때론 추억으로, 때론 절망으로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이렇듯 평범이라는 단어는 얼핏 보기에는 그저 그런 색깔 없는 무채색 같아도 알쏭달쏭한 모호함을 품은 채 때때로 애꿎은 힘을 뻗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학창 시절 학년이 바뀔 때처럼 뭔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나를 소개해야 할 때 나는 매번 곤혹스러웠다.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은 공간을 할애해서 굳이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 하니 당혹스러울 밖에 없었던 거다. 텅 빈 공간에 '그냥 다 평범해요'라고 대차게 한 줄로 써버리는 객기를 부릴까 고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기야 이런 객기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부리는 특권 중 하나다.
평범한 지역에서, 평범한 가정 형편에,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지능에, 평범한 운동신경에, 평범한 말재주에, 평범한 성격에... 끝이 없다. 밤을 새울 수 있다. 이런저런 명사 앞에 '평범한'을 갖다 붙여 그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어느 정도 나를 설명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인정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절대 주관적이다. 결국 내가 받아들인, 내가 임의로 설정한 사회적 기준에 맞춰 내가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나를 비범하다고 평가한 사람도 딱히 없다. 이렇듯 나는 날 자진해서 '평범'의 범주에 집어넣었다. 별다른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자발적인 인정이 반드시 순탄함과 편안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내 안의 평범하지 않은 한 부분이 문제를 제대로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인정 욕구'.
나를 창조한 자가 부여한 거라 어쩔 수 없지만 이왕이면 높디높은 자존감도 함께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물론 열등감에 휩싸여 옴싹달싹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인정 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높지 않았다는 의미다.
모든 게 지극히 평범한데 자존감을 동반하지 않은 채 비범한 인정 욕구가 작동한다면 삶은 정말 피곤해진다. 평범한 재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 순간 범상치 않다는 평가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지 답은 뻔하지 않은가? 미치도록 발을 굴리며 애를 써야 한다. 성실함을 주 무기로 삼은채 말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자존감은 겸손으로 포장한 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평범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성실함. 하지만 사실 이것도 원래 평범한 범주 내에 있었지만, 인정에 대한 어쭙잖은 갈망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수준으로 발전한 게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내가 의존하는 성경 구절이다. 평범한 나에게 이만큼 용기를 북돋우는 구절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입맛에 맞게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을 꾸려왔다.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말이다. 기준점을 온전히 밖으로 향한 채 말이다. 비범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