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 인정 중독입니다
두 번째. Because of me
시험지 한가득 채워진 수학 문제를 대부분 풀지 못해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이다. 꿈이다.
시험 날짜가 코 앞에 닥쳤는데 전혀 준비가 안됐다. 공부를 해보려 온갖 애를 쓰지만 뿌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글이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아무리 눈을 비벼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쩔쩔맨다.
다행이다. 꿈이다.
종이 울린다. 시험지를 걷는다. 그 순간 알아차린다. 시험지 뒷면에도 문제가 빼곡하다는 것을.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른다.
다행이다. 꿈이다.
며칠 전까지도 이 따위 꿈을 꾸다 깜짝 놀라 잠을 깼다. 시험지에 코를 박아야 하는 학생의 삶은 진작에 마무리됐지만 아직도 시험에 시달리는 꿈을 꾸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때론 안쓰럽다. 그러면서 왜 아직 학창 시절의 불안과 긴장을 떨쳐내지 못하는지 잠시 생각해본다.
수렴되는 두 단어가 있다. '평범'과 '인정'
내가 어릴 적 살던 우물은 작고 잔잔했다. 그 우물 안에서 나는 지극히 평범한 범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욕심만큼은 평범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래야 한다고 닦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모님? 전혀 아니다. 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셨고 오히려 애쓰는 나를 기특해하면서도 신기해하셨다. 나의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보다 훨씬 더 넓은 테두리를 치고 그 안에서 방목하는 양육 방법을 선택하셨다. 부모님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내게 그대로 대입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길을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기를 바라신 건 맞지만 결과보다 노력하는 과정에 훨씬 많은 힘을 실어주셨다.
그렇다면 나를 몰아세운 주범은 결국 ‘나’, 나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별다른 재주가 없었고 성격까지 내향적이었던 나는 나의 평범함은 받아들였지만 끝까지 그 범주에 머무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공부, 아니 성적이라는 무기를 갈고닦았다.
공부가 경마라면 학생은 경주마다.
내가 경주마일 때는 각 경주마의 출발선도, 출발시점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더 빨리 뛰기 위해 경주마가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쟁하는 경주마의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다 보니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경주마는 주목받았고, 특히 역전 시나리오를 쓰는 경주마는 더 큰 환호를 받았다. 경주마를 훈련시키는 기수는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고, 학교 선생님이 대부분 그 역할을 맡았다. 지금보다 훨씬 단조로운 경기였고, 장애물도 그 정도면 무난했다. 그래서 내게는 승산이 있는 게임이었다.
나는 공부라는 경기 자체를 즐기던 경주마가 절대 아니었다.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인정과 시선이 훨씬 중요했다. 외모와 재능 면에서 지극히 평범한 말이 관심을 끌려면 정말 열심히, 딴짓하지 않고 달려야 역전할 수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에서처럼 재능 있는 토끼가 여유를 부리며 잠드는 시나리오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늘 거북이였으니까.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인정받기 전략은 그럭저럭 잘 통했다. 여기서 잠시, 오해는 금물이다. 인정의 의미를 너무 확대 해석하면 곤란하다. 내가 속한 작은 우물 안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 세상에 넘보지 못할 탁월한 토끼들은 너무 많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작은 우물이지만 인정받기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은 분명 있다. 내게 있어 그것은 매번 찾아오는 긴장감이었던 싶다.
자신 없는 과목의 시험의 첫 번째 문제를 풀어내지 못할 때의 당혹감, 재깍재깍 시계 분침 소리와 함께 꼴깍거리는 호흡, 흩어진 집중력으로 쉴 새 없이 시험지를 이리저리 뒤적일 때의 난처함, 굳이 도서관 옆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목청껏 외치는 장사꾼 아저씨에 덕분에 같은 글을 무한 반복해서 읽을 때의 산만함, 아무리 책상에 머리를 박아도 글자가 둥둥 떠다니는 기묘한 경험에서 오는 조바심 등 경주마의 성실함을 무력하게 하는 그때 그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직도 가슴 졸이며 시험 치는 꿈을 꾼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경주마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꿈을 밤새 꾸며 몸서리친다. 꿈이라서 다행이라 안도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