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향한 모두의 좋아요: 인정 중독입니다

세 번째. Ctrl C + Ctrl V

by yErA

대학생 시절 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렸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전공과목 수업은 산꼭대기에 있는 건물에서 대부분 열렸다.

숨쉬기 이외 최소한 이 정도 운동은 하고 살라는 학교의 깊은 배려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 정도의 가파른 언덕을 뛰어다니지는 못할 듯하니 천천히 걸으며 사색이라도 하라는 고차원적인 배려인지 알 수 없지만, 대학 시절 나는 그 언덕을 꾸역꾸역 오르내렸다. 그래서 아직까지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끌며 언덕을 끝없이 오르는 꿈을 꾸며 밤새 힘들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언덕을 걸을 때마다 매번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있었다. 직선과 곡선을 자유롭게 또는 거침없이 표현하는 몸짓이 오롯이 비치는 무용과 연습실,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제멋대로 우거진 반대편 언덕에서 들리는 둔탁한 망치질 소리. 여기는 아마 조소과 작업 공간이었으리라. 나와 다른 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그들의 묵직한 움직임을 매번 흘깃거렸다.

뭔가 그들만의 당찬 목표와 꿈, 열정이 집약된 공간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머쓱했지만. 그래도 그 흘깃거림을 빼놓지 않았다.

주어진 문제지에 답을 빼곡히 써가기보다는 자기만의 문제지를 직접 만들고 있는데 대한 부러움이었다는 것은 한참 지나서 알게 됐다.

반복하는 춤 선에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가슴을 활짝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당찬 포즈에서, 추리한 작업복을 입은 채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쉴 새 없이 깎고 다듬고 그러다 잠시 일어나 쿨하게 담배 한 모금 뱉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르막길을 부지런히 오르는 내가 이상하게 서글퍼지곤 했다. 무엇을 할지 모른 채 그냥 열심히 걷기만 하는 게 안타까웠던 걸까?


나이로는 어른이 됐지만 나를 찬찬히 돌아볼 어른스러움도, 아니면 생뚱맞게 어딘가에 꽂혀 오롯이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도전장을 던지는 무모함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밤새 젊음의 열기로 어둠을 불태워버리겠다는 주체할 수 없는 흥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앞에 있는 언덕을 열심히 오르내렸다.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어설픈 인정 욕구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 사회 첫 발이 꿀리지 않고 그럴듯해야 했기에 꽤나 멋져 보이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기웃거렸다. 그들의 삶을 복사해서 최대한 내게 붙여 넣는 게 중요했고, 주변에서 '엄지 척' 받기를 기대했다.

물론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있다. '그럴듯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경제적, 심적으로 쉽지 않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수없이 맞닥뜨렸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나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나를 종이에 비유한다면 질감은 어떤지, 원래 고유한 색깔은 무엇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물감을 잘 흡수하는지, 쉽게 구겨지는지, 어떤 무늬가 어울리는지 등에 대한 생각 등은 단연 없었다. 그래, 아직 너무 어려 그랬다고 하자.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 안타깝게도 많은 생각을 하고 지냈다.

시험 출제 방향과 유형을 파악하고, 시험 기출문제를 반복해 풀어 좋은 성적을 얻듯이 그런 식으로 인생설계를 하느라 바빴다. 철저하게 시선은 내가 아닌 밖을 향했다. 새하얀 백지가 있는지 몰랐다. 다양한 난이도가 뒤섞인 시험문제가 가득 찬 시험지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성공 스토리가 중요했다. 그것은 내게 시험 출제 방향이었고, 기출문제였다.

'평범'한 나는 또다시 그렇게 인정을 바라며 열심히 살았다. 주어진 시험지를 최대한 열심히 풀듯이 말이다. 꾸역꾸역 언덕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면서 말이다. 낯선 공간에 있는 그들의 움직임을 흘깃거리는 것을 빼먹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다.

어설픈 경주마는 입시라는 장애물에 이어 취업이라는 장애물도 그렇게 뛰어넘었다. 어디로 달리는지 모르는 채 말이다. 그렇게 다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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