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엑소더스
‘EXODUS’는 대탈출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의 엑소더스는 이집트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의 삶에서 해방돼 신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향하는 대탈출기에 관한 것이다.
억압의 땅 이집트로부터 오합지졸 이스라엘 민족의 대탈출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훼방하는 이집트에 신이 내리는 무시무시한 열 가지 재앙 등 여러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가득하지만, 이 스토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맹추격하는 이집트 군대가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 양쪽으로 쫙 갈라지는 거대한 홍해, 이스라엘 민족이 바닷길을 가까스로 건너고 난 이후 아슬아슬하게 따라붙는 이집트 군대를 집채만 한 파도가 집어삼키는 그 극적인 순간, 즉 해방이 성공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종교적 의미를 제쳐두고서라도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인 이유는 기적이 만드는 극적인 한판승이라는 통쾌함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대한 바다가 내 눈앞에서 양옆으로 쩍 갈라지는 그런 기적을 바라기는 했을까? 기적을 구하기는커녕 있는 곳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닐까? 미래의 불확실성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하며 이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한 것은 아닐까?
언약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없었다는 핑계로, 대탈출은 어떻게 성공하더라도 바다가 내 앞에서 갈라지는 기막힌 기적이 내게는 예외일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나를 쫓는 적들이 단숨에 소탕되는 기적이 행여 일어난다 하더라도 언약의 땅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황량한 광야에서 감내해야 할 인내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이른 포기로, 그냥 애초부터 착실한 노예의 삶을 선택하며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방을 꿈꾸며 떠난 동료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면서 나 자신을 매 순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멋지게 화려하게 포장하느라 애썼지만, 결국은 착실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계속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일까?
전지전능한 신이 기막힌 기적을 통해 한꺼번에 적을 쓸어버리고, 인간의 하찮은 계획이 아닌 신의 방식과 의도대로 진행되는 이 찬란한 스토리에서 왜 나는 많은 물음표에 갇혀버린 걸까? 무수한 질문 앞에서 왜 당당하지 못한 걸까? 왜 나는 신의 역사 안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걸까?
'해방', 'exodus'
지금 이 단어 앞에서 왜 가슴이 먹먹하기도, 설레기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