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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중독입니다

여섯 번째. 성실한 노예

by yErA

재산을 미리 상속받은 두 아들이 있다. 형은 성실하게 일하면서 아버지 옆을 지킨다. 반면 동생은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 빈털터리가 돼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곤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돌아온 동생을 반기며 살찐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인다. 이를 본 형은 그동안 자기를 위해 새끼양 한 마리조차 잡지 않은 아버지에게 서운해하며 낙심한다.


이에 아버지는 "너는 나와 늘 함께했고 나의 모든 것이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성서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다. 기독교 관점에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로 수많은 미술가와 문학가들의 작품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성경 이야기냐고? 어릴 적부터 자주 접해 딱히 새롭지 않은 바로 이 탕자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를 강하게 내려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스승이라 여기는 유일한 분이 있다. 故 이어령 선생이다.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잠시 제쳐두기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스승이 나를 제대로 흔들어 깨웠다. 저 탕자 이야기와 백 마리 무리에서 이탈한 한 마리의 양 이야기를 가지고 말이다.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 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제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한 놈이다. 탁월한 놈이지.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 [1]


존재했어?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모두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제껏 착실하게 살아온 나다. 그런데 존재했냐고?


이어령 선생은 거듭 묻는다. 성실한 노예의 비유를 들면서 말이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감자 씨를 뿌리고, 거두고, 쌓았던 착실한 노예에게 어느 날 주인이 큰 감자는 오른쪽 구덩이에, 작은 감자는 왼쪽 구덩이에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노예는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주인이 이유를 물으니 큰 감자와 작은 감자에 대해 도무지 판단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2]


이제껏 나에 대한 기준을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나? 그 기준대로 나만의 결정이 내린 건 과연 무엇이었나?


성실한 노예, 왜 이 단어가 낯설지 않을까? 왜 이 단어의 굴레를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을까? 정말 나는 그냥 성실한 노예였던 걸까? 단번에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었다. 슬프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1]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2021), p167-168

[2]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2021),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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